부모님과 에스파: 세대를 넘어선 연결
아버지가 갑자기 내 방 문을 두드리셨을 때, 나는 황급히 에어팟을 빼며 모니터를 껐다. "들어오세요." 평소처럼 무심한 척했지만, 아버지의 손에 들린 것을 보고 숨이 멈췄다. 내 생일 선물로 준비했다던 그 봉투 대신, 에스파의 콘서트 티켓이 들려 있었다.
"이거... 어떻게..." 말을 잇지 못하는 내게 아버지는 쑥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네 플레이리스트를 우연히 봤거든. 'Next Level'이란 노래가 계속 반복재생 되더라고."
엄마는 부엌에서 된장찌개를 끓이며 투덜거렸다. "네 아빠, 일주일 내내 '나 혹시 몰라~'만 흥얼거렸어. 정신 나가는 줄 알았다니까." 집 안에 된장찌개 냄새가 진하게 퍼졌고, 그 익숙한 향기 속에서 낯선 감정이 피어올랐다.
부모님이 내 취향을 이해하려 노력하는 모습은 처음이었다. 특히 아버지는 항상 "요즘 음악은 시끄럽기만 하다"며 클래식만 고집하셨다. 엄마도 "네 나이에 공부나 열심히 해"라는 말만 반복하셨다. 그런 부모님이 내 관심사에 귀 기울이고 있었다니.
그날 저녁, 우리 가족은 처음으로 내 플레이리스트로 저녁을 먹었다. 아버지는 'Black Mamba'의 비트에 젓가락으로 리듬을 맞추셨고, 엄마는 가사를 궁금해하며 번역을 물으셨다. 처음으로 느껴보는 연결감에 가슴이 따뜻해졌다.
콘서트 당일, 아버지는 형광색 응원봉을 들고 어색하게 서 계셨다. 엄마는 "저 사람들은 왜 저렇게 소리를 지르는 거니?"라고 물으셨지만, 곧 'Winter'의 고음에 감탄하셨다. 공연이 절정에 이르렀을 때, 나는 옆을 돌아보았다. 부모님의 눈이 반짝였다. 그건 단순히 화려한 무대 조명 때문만은 아니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아버지가 물으셨다. "너희 세대와 우리 세대는 정말 다른 것 같아. 그런데 음악은... 어쩌면 시대를 초월하는 걸까?"
그 말에 생각해보니, 아버지의 LP판과 내 디지털 플레이리스트, 그리고 에스파의 현실과 가상을 넘나드는 세계관 사이에는 공통점이 있었다. 모두 경계를 허물고 연결되기를 갈망한다는 것.
다음 날 아침, 아버지의 서재에서 낯선 멜로디가 흘러나왔다. 조용히 문을 열자, 아버지는 헤드폰을 끼고 에스파의 'Savage'를 들으며 두꺼운 회계장부를 정리하고 계셨다. 우리 사이에 존재했던 보이지 않는 벽이 한 장의 콘서트 티켓으로 무너져 내렸다. 때로는 이해하지 못해도 서로의 세계를 존중하는 것, 그것이 진정한 연결의 시작임을 그제야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