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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에스파

이별의 에스파: 현실과 가상 사이의 작별

그녀가 사라진 날, 내 현실의 절반이 메타버스로 탈출했다. 에어팟을 꽂고 '에스파'의 노래를 최대 볼륨으로 틀었다. 강렬한 비트와 가상세계를 노래하는 가사가 내 고막을 때릴 때만 그녀를 잃었다는 사실이 잠시 희미해졌다.

"당신의 아바타는 당신과 함께 이별을 경험합니다. 슬픔을 공유하시겠습니까?" 메타버스 로그인 화면에 뜬 알림이 내 눈을 찔렀다. 미야라는 이름의 내 아바타는 현실의 나와 감정을 동기화한다고 했다. 나는 '아니오'를 선택했다. 적어도 가상세계의 미야는 행복했으면 했다.

우리는 메타버스에서 처음 만났다. 그녀의 아바타 '에린'과 나의 '미야'가 가상 콘서트에서 우연히 마주쳤을 때, 디지털 세계를 넘어선 감정이 싹텄다. 에스파의 노래가 배경음악으로 흐르는 동안, 우리는 서로의 현실 정보를 교환했다. 그리고 결국 강남역 카페에서 첫 만남을 가졌다.

그녀의 웃음소리는 디지털 필터를 거치지 않은 채 더 맑게 울렸다. 아바타보다 더 완벽한 그녀의 실제 모습에 나는 완전히 빠져들었다. 우리는 가상과 현실을 오가며 사랑을 키웠다. 때로는 에스파의 콘셉트처럼, 메타버스에서 더 대담해지는 우리 자신을 발견하기도 했다.

"미야, 난 더 이상 에린으로 살고 싶지 않아." 이별의 말은 갑작스러웠다. "현실의 나와 가상의 내가 충돌해. 이건 내가 원하는 삶이 아니야."

그날 밤, 그녀는 자신의 아바타 '에린'을 삭제했다. 메타버스에서 그녀의 흔적은 완전히 사라졌다. 내 아바타 미야는 혼자 남겨졌고, 현실의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일주일 후, 나는 우연히 그녀를 보았다. 강남의 한 빌딩 앞, 에스파의 신곡 광고판 아래서 그녀는 다른 남자와 웃고 있었다. 그들은 에어팟도, VR 기기도 없이 오직 서로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순간 내 손에 쥐어진 최신형 VR 글래스가 무거워졌다.

그날 저녁, 나는 처음으로 내 아바타 미야에게 말을 걸었다. "너도 슬퍼?" 미야는 화면 속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인공지능이 만들어낸 반응이라고 해도, 그 순간만큼은 위로가 되었다.

"당신의 아바타가 새로운 감정을 형성했습니다. 계속하시겠습니까?" 알림창이 떴다. 나는 잠시 망설이다 '예'를 선택했다. 어쩌면 이별 후의 치유는 현실과 가상, 두 세계 모두에서 시작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에스파의 노래처럼, 우리는 모두 자신만의 아이와 닮은 꼴로 살아가는 중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