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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레스에스파

타임아웃 스트레스: 에스파가 되는 꿈

알람이 울리지 않았다. 내 머릿속에서 "Next Level"이 멈추지 않고 재생되고 있었을 뿐이다. 눈을 떴을 때 시계는 이미 8시 47분을 가리키고 있었고, 9시 프레젠테이션을 위한 최종 리허설이 있는 나에게 남은 건 순수한 공포뿐이었다.

"제발, 제발, 제발..." 내 입에서는 주문처럼 같은 말이 반복해서 흘러나왔다. 어젯밤까지 발표 자료를 완성하느라 새벽 3시까지 일했던 것이 화근이었다. 에스파의 신곡 뮤직비디오가 공개되던 날이라 잠깐만 보려던 것이 두 시간이나 흘러갔고, 결국 작업은 늦어졌다. 증강현실과 가상세계를 넘나드는 그들의 세계관이 내 현실보다 더 매력적으로 느껴진 순간이었다.

차가운 물로 세수를 하며 거울 속 붓기 가득한 내 얼굴을 마주했다. 검은 눈 밑 다크서클은 마치 에스파의 'Black Mamba'가 내 얼굴에 남긴 흔적 같았다. 프레젠테이션 의상으로 준비해둔 정장을 허겁지겁 입고, 미처 말리지 못한 머리카락에서는 물방울이 떨어졌다. 아침 식사는 꿈도 꿀 수 없었다.

택시를 잡으려 했지만 출근 시간대 비는 차는 없었다. 결국 지하철을 타기로 결정했다. 역으로 달려가는 내 발걸음은 리듬감 있게 움직이는 에스파의 안무와는 거리가 멀었다. 숨이 턱까지 차오르는 가운데 지하철역에 도착했을 때, 이미 플랫폼은 사람들로 가득했다.

열차가 들어오자 사람들 사이로 비집고 들어갔다. 차 안은 압축된 인간의 열기와 긴장감으로 가득했다. 누군가의 스마트폰에서 에스파의 노래가 새어 나왔다. 그 순간 내가 아침에 USB에 발표자료를 옮겨 놓지 않았다는 사실이 번개처럼 머리를 강타했다. 내 심장은 에스파의 강렬한 비트보다 더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아... 망했다." 이제는 주문도 소용없었다. 내 손에 쥔 텅 빈 USB를 바라보며 절망감이 밀려왔다. 그 순간 옆에 서 있던 여자가 내 표정을 흘끔 바라보더니 무언가를 건넸다. 에스파의 로고가 새겨진 USB였다.

"필요해 보이네요," 그녀가 말했다. "전 에스파 팬인데, 이 USB에 그들의 모든 곡이 있어요. 당신에게 행운을 주길 바랄게요."

황당함과 고마움이 뒤섞인 채 USB를 받았다. 사무실에 도착해 서둘러 컴퓨터를 켰다. 시간은 8시 57분. 회의실로 가기 전 USB를 꽂고 내용을 확인했다. 놀랍게도 음악 파일뿐만 아니라 'PRESENTATION_BACKUP'이라는 폴더가 있었고, 그 안에는 내 발표 자료의 완벽한 복사본이 들어 있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시간이 없었다. 자료를 다운로드하고 회의실로 달려갔다. 프레젠테이션은 완벽했고, 팀장은 내 제안을 승인했다. 회사를 나서는 길에 그 USB를 다시 확인했지만, 이제 그곳에는 에스파의 음악만이 남아있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지하철에서 나는 에스파의 노래를 들으며 창밖을 바라보았다. 현실과 가상이 교차하는 그들의 세계관처럼, 오늘의 사건도 어쩌면 내 스트레스가 만들어낸 환상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 주머니 속 USB와 성공한 프레젠테이션은 분명 현실이었다. 어쩌면 우리는 모두 스트레스라는 Black Mamba와 싸우는 자신만의 에스파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