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이중생활: 에스파 속 비밀
누구나 집을 나서면 다른 사람이 된다. 하지만 내 아내는 문을 닫는 순간 완전히 다른 우주로 사라진다. 이 사실을 알게 된 건 결혼 3년째, 그녀의 노트북을 우연히 열었을 때였다.
"내 아바타가 휴식이 필요해." 화상통화 창에서 아내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러나 화면 속 그녀는 내가 아는 아내가 아니었다. 형광빛 푸른 머리카락, 완벽하게 다른 얼굴, 그리고 현실에서는 결코 입지 않을 미래지향적인 의상. 그녀는 '카리나'라고 불렸다.
"오늘 공연 준비는 다 됐어? 팬들이 미칠 것 같아." 다른 목소리가 말했다. 화면에는 세 명의 다른 여성들, 아니, 아바타들이 보였다. "에스파 컴백 무대, 우리가 또 역사를 쓰는 거야."
아내는 평범한 회계사였다. 야근이 많다고 했지만, 실상은 가상 아이돌 그룹 '에스파'의 일원으로 이중생활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현실의 몸은 우리 아파트에 있지만, 그녀의 의식은 메타버스 속 아이돌이 되어 수만 명의 팬들 앞에서 춤추고 노래했다.
컴퓨터를 덮고 거실로 나왔다. 그녀는 소파에 앉아 헤드셋을 쓴 채 손가락으로 공중에 무언가를 조작하는 동작을 하고 있었다. 땀방울이 이마를 타고 흘렀지만 그녀는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격렬한 안무를 추고 있는 중이겠지.
"여보." 부르자 그녀는 흠칫 놀라며 헤드셋을 벗었다. 그녀의 눈에서 뭔가가 사라졌다. 형광빛 푸른 머리카락을 가진 자신감 넘치는 '카리나'가 순식간에 내 옆에서 잠자는 수줍은 아내로 돌아왔다.
"나... 설명할 수 있어." 그녀의 목소리가 떨렸다.
"다 봤어. 당신이 누구인지." 내가 말했다.
그녀의 눈에 공포가 스쳤다. "난 그냥... 평범한 삶에서 벗어나고 싶었어. 저기서는 내가 빛나는 사람이 될 수 있었거든."
침묵이 우리 사이를 가득 채웠다. 갑자기 그녀의 노트북에서 알림음이 울렸다. "카리나, 5분 뒤 라이브 시작합니다."
아내의 눈이 노트북으로 향했다가 다시 나를 바라봤다. 그 순간 이해했다. 내가 알던 아내는 그저 절반에 불과했다. 나머지 절반은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서버에 저장된 데이터 속에 살고 있었다.
"가도 될까?" 그녀가 물었다. 그녀의 눈에서 이미 카리나가 깨어나고 있었다.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다시 헤드셋을 쓰자, 우리 집 거실에는 내 아내의 몸뿐이었다. 그녀의 영혼은 이미 다른 세계로 떠났다. 때때로 우리는 모두 현실에서 도망칠 곳이 필요하다. 내 아내에게는 그곳이 에스파였다. 그리고 어쩌면, 나도 그녀를 따라갈 준비가 되어 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