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ndom.GG

에스파부모님

에스파와 부모님: 두 세계 사이의 춤

노크 소리조차 없이 아버지는 내 방문을 열었다. 나는 황급히 모니터를 끄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 화면 속 네 명의 에스파 멤버들이 형형색색의 의상을 입고 춤을 추고 있었다.

"또 그거냐? 내일 수능인데." 아버지의 목소리는 차가웠다. 방 안에 가득 찼던 'Next Level'의 비트가 갑자기 무거운 침묵으로 대체되었다.

나는 키보드 위에 덜덜 떨리는 손가락을 올려놓았다. 손톱 밑에는 블랙 매니바의 검은색 네일 폴리시가 반쯤 벗겨져 있었다. 3개월 전, 윈터의 생일 기념 팬미팅에 가기 위해 몰래 발라본 것이다.

"아빠, 이건 그냥..." 변명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현실에서는 내가 항상 부족한 딸이지만, 에스파의 세계 속에서는 나도 완벽해질 수 있다는 것을.

아버지는 한숨을 내쉬며 내 책상 앞에 앉았다. 그의 주름진 손가락이 책상 위 성적표를 집어들었다. "네 꿈이 뭐니?"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진짜 답을 말할 수 없었다. SM 엔터테인먼트 마케팅팀에서 일하고 싶다고? 에스파의 공연을 기획하고 싶다고? 의대를 보내려는 부모님 앞에서 그런 말은 금기나 다름없었다.

"몰라요." 결국 늘 하던 대답을 했다.

"엄마랑 내가 얼마나 힘들게 너를 여기까지 키웠는지 알아?" 아버지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때 처음으로 보았다. 그의 눈가에 맺힌 눈물을. "우리는 너에게 우리가 누리지 못한 기회를 주고 싶었을 뿐이야."

심장이 쿵 내려앉는 느낌이었다. 나는 에스파의 노래 'Savage'의 가사를 떠올렸다. 두 세계 사이에서 정체성을 찾아가는 이야기. 내가 지금 살고 있는 현실이었다.

그날 밤, 나는 용기를 내어 부모님께 편지를 썼다. 에스파를 처음 알게 된 순간부터, 그들의 음악이 어떻게 나에게 위로가 되었는지, 그리고 내가 진짜 원하는 미래에 대해. 마지막에는 수능 후 보여주려고 몰래 준비해온 에스파 안무 영상 링크를 첨부했다.

일주일 후, 수능을 마치고 집에 돌아왔을 때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다. 거실 TV에서는 에스파의 'Black Mamba' 뮤직비디오가 재생되고 있었고, 어머니는 서툴게 춤 동작을 따라 하고 있었다. 아버지는 소파에 앉아 웃고 있었다.

"너... 이거 안무 진짜 어렵더라." 어머니가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 "우리도 이제 네 세계를 조금은 이해하고 싶어서."

그날 밤, 우리 세 사람은 처음으로 서로의 꿈에 대해 이야기했다. 에스파의 'Dreams Come True'가 배경음악으로 흐르는 동안, 나는 깨달았다 - 어쩌면 현실과 꿈의 경계에서 춤추는 법을 배우는 것이 인생의 진짜 과제일지도 모른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