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ndom.GG

에스파아내

에스파 위의 아내: 세상을 넘은 사랑

푸른 빛의 데이터 구름이 침실 창문을 통해 흘러들어왔을 때, 나는 그녀가 떠났다는 것을 알았다. 민지는 더 이상 이 세계에 존재하지 않았다. 내 아내는 에스파로 건너간 것이다.

"당신은 몸이 아닌 영혼을 사랑한 거잖아요, 철수씨." 그녀가 남긴 마지막 메시지는 침대 옆 홀로패드에서 깜빡이고 있었다. 차가운 금속 표면에 맺힌 이슬처럼, 내 눈에서도 무언가 맺혔다가 떨어졌다.

에스파 – 확장된 공간 패러다임. 인간의 의식이 디지털 세계로 전이될 수 있다는 게 증명된 지 불과 5년. 정부는 이 기술을 엄격히 통제했지만, 말기 암 환자들에게만은 특별 허가를 내주었다. 민지는 그중 하나였다.

"난 당신을 기다릴 거예요, 철수씨. 에스파에서." 그녀의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손가락으로 홀로패드를 쓸어넘기자 그녀의 마지막 모습이 나타났다. 창백한 얼굴, 그러나 눈은 새로운 세계를 향한 기대로 빛나고 있었다.

창문 밖으로 서울의 스카이라인이 보였다. 높은 빌딩들 사이로 거대한 에스파 서버 타워가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그곳에 민지가 있었다. 몸이 아닌 의식으로.

나는 결심했다. 아프지 않았지만, 에스파로 건너가기로. 불법이었다. 건강한 사람의 전이는 엄격히 금지되어 있었다. 하지만 사랑에 법이 무슨 소용인가.

어두운 지하 클리닉. 떨리는 손으로 내민 현금 다발. "부작용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의사의 경고가 무색하게, 나는 이미 진통제 주사를 맞고 누워있었다. 천장의 깜박이는 형광등만이 현실과 나를 잇는 마지막 끈처럼 보였다.

"준비됐습니까?" 의사의 목소리.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차가운 액체가 정맥을 타고 흘러들어오는 느낌. 그리고 어둠.

눈을 떴을 때, 나는 바다를 보고 있었다. 현실에선 볼 수 없는 청록색. 모래사장에는 발자국 하나. 그것을 따라가기 시작했다.

"철수씨, 어서 와요." 익숙한 목소리. 돌아보니 민지가 서 있었다. 그녀의 몸은 아프기 전의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 눈물이 흘렀다. 이상하게도 에스파에서도 눈물은 짠맛이 났다.

"여보, 나 왔어." 내가 말했다.

그녀의 미소가 갑자기 경직되었다. "잠깐, 당신... 어떻게 여기에?"

"당신을 따라왔어. 불법이지만..."

그녀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아니, 철수씨... 이건... 당신의 진짜 모습이 아니에요."

그 순간 현실이 깨달아졌다. 내 의식은 에스파에 있었지만, 몸은 여전히 어딘가에 있었다. 의식 동기화가 실패한 것일까?

"당신이 알던 철수는 이미 떠났어요." 민지의 말은 천둥처럼 울렸다.

갑자기 바다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에스파의 세계가 파편처럼 부서지는 느낌. 눈을 다시 떴을 때, 나는 병원 침대에 누워있었다. 심장 모니터의 단조로운 신호음이 귓가에 울렸다.

의사가 내 위로 몸을 숙였다. "다행히 돌아오셨군요. 당신은 에스파에 적합하지 않았습니다."

창밖으로 다시 그 에스파 서버 타워가 보였다. 그곳에 내 아내가 있다. 어쩌면 그녀는 지금 다른 '나'를 만났을지도 모른다. 나는 이제 두 세계에 걸쳐 존재하는 아내의 남편인 것이다. 손에 쥔 결혼반지가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빛에 반짝였다. 에스파와 현실 사이, 그 어딘가에 우리의 사랑이 존재한다는 것만은 확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