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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파취업

에스파: 취업의 세계로

파란색 광선이 내 이마를 스캔하자 전신이 데이터로 분해되는 느낌이 들었다. "에스파 접속 완료. 취업 시뮬레이션을 시작합니다." 기계적인 여성의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나는 일주일 전, 취업 준비생 천만 명 중 무작위로 선발된 백 명 중 하나였다. 정부의 최첨단 인공지능 시스템 '에스파'가 개인의 잠재력을 분석해 최적의 직업을 매칭해준다는 프로그램이었다. 실패율 0%라는 그 시스템을 믿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눈을 떴을 때 나는 낯선 사무실에 서 있었다. 손에는 태블릿이 쥐어져 있었고, 화면에는 오늘의 일정이 빼곡했다. 옷장에서 정장을 꺼내 입고, 머리를 빗고, 향수를 뿌리는 모든 행동이 내 의지와 무관하게 완벽히 이루어졌다. 마치 누군가가 내 몸을 원격 조종하는 것 같았다.

"오늘은 신제품 출시를 위한 프레젠테이션이 있습니다, 최 부장님." 비서로 보이는 여성이 커피를 건네며 말했다. 최 부장님? 나는 대학을 갓 졸업한 취준생인데?

회의실에 들어서자 모든 시선이 나에게 집중됐다. 나도 모르게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프레젠테이션을 시작했다. 전문 용어들이 내 입에서 술술 흘러나왔다. 질문에 대답하고, 아이디어를 제시하고, 팀원들과 소통하는 모든 과정이 완벽했다. 이것이 에스파가 나에게 맞춤설계한 미래였다.

그날 밤, 호텔 같은 내 아파트로 돌아와 와인 한 잔을 마시며 창밖을 바라봤다. 서울의 야경이 발아래 펼쳐졌다. 성공한 내 모습에 취해있을 때였다. 거울에 비친 내 얼굴에서 섬뜩한 무언가를 발견했다. 내 눈동자가 잠시 파란색으로 번쩍였다.

"취업 시뮬레이션이 종료됩니다. 만족도를 평가해주세요."

현실로 돌아온 나는 하얀 방 한가운데 서 있었다. 벽에는 내가 체험한 직업의 만족도와 적합도를 보여주는 그래프가 나타났다. 97% 일치. 그리고 그 아래 작은 글씨로 쓰여 있었다. "실제 고용 계약을 위해 귀하의 개인 데이터를 활용하는 것에 동의하십니까?"

손가락이 '동의' 버튼을 향해 움직였다. 그런데 문득 의문이 들었다. 내가 체험한 그 미래는 정말 내가 원하는 삶이었을까? 아니면 누군가가 프로그래밍한 완벽한 취업 시나리오에 불과했을까? 파란 버튼 위에 멈춘 내 손가락이 떨리기 시작했다. 그때 에스파 시스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선택의 시간입니다. 당신이 꿈꾸던 미래로 가는 문이 열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