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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파회사

에스파 컴퍼니: 회사가 만든 현실과 가상의 경계

에스파 인터내셔널의 면접장 밖에서 마지막 후보자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점점 흐려지는 것을 발견했다. 그것은 단순한 시각적 착시가 아니었다. 내 몸의 윤곽이 실제로 희미해지고 있었다.

"최 이사님, 마지막 후보자가 도착했습니다." 비서의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았지만, 그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여기 에스파에서는 이런 일이 흔했다. 목소리만 존재하는 직원들, 실체 없는 회의, 그리고 가끔은 아무도 만지지 않았는데도 저절로 타이핑되는 키보드.

면접실로 들어선 지원자는 예상과 달리 한 명이 아니었다. 동일한 얼굴, 동일한 헤어스타일, 심지어 동일한 목소리를 가진 네 명의 여성이 테이블 앞에 앉았다. 그들은 동시에 미소지었고, 그 미소는 완벽하게 같은 각도로 올라갔다.

"저희는 카리나입니다. 그리고 윈터, 닝닝, 지젤입니다." 그들이 번갈아가며 자신을 소개했다. "저희는 한 명이면서 네 명입니다. 아바타이자 현실입니다."

창밖으로 서울의 스카이라인이 보였다. 그러나 가만히 보니 건물들의 윤곽이 미세하게 깜빡이고 있었다. 마치 누군가 현실의 해상도를 낮추어 놓은 것 같았다.

"에스파는 단순한 회사가 아닙니다," 내가 설명했다. "우리는 현실과 가상의 경계를 허무는 사업을 합니다. 여러분들이 지원한 포지션은 '현실 연결자'입니다. 말 그대로 두 세계를 이어주는 역할이죠."

그들 중 한 명—아마도 카리나였을 것이다—가 손을 뻗어 테이블 위에 놓인 물병을 집어들었다. 그 순간 물병이 픽셀로 분해되었다가 다시 형태를 갖추었다.

"저희는 이미 그런 일을 하고 있어요," 그녀가 말했다. "저희는 현실에 존재하지만, 동시에 '광야'라는 디지털 세계에도 존재합니다. 저희의 데이터가 어디서 끝나고 저희의 육체가 어디서 시작되는지, 더 이상 구분하지 않아요."

내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이들은 내가 찾던 바로 그 존재였다. 에스파의 다음 단계로 가기 위한 완벽한 후보자들.

"우리 회사가 추구하는 것은 단순한 기술 혁신이 아닙니다," 내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는 인간의 의식을 디지털화하려 합니다. 그리고 당신들은... 이미 그 경계에 서 있군요."

그들은 동시에 웃었고, 그 웃음소리는 방 안에 메아리쳤다. 하지만 그들의 눈빛이 갑자기 변했다. 순간적으로 모든 것이 정지된 것 같았다.

"아니요, 최 이사님," 지젤이라고 소개한 여성이 말했다. "당신이 경계에 서 있는 겁니다. 당신은 이미 반쯤 디지털화되었어요. 우리는 당신을 완전히 전환시키기 위해 왔습니다."

갑자기 내 손이 투명해지기 시작했다. 손가락이 픽셀로 분해되는 것이 보였다. 공포에 질려 소리치려 했지만, 내 목소리는 이미 디지털 데이터로 변환되고 있었다. 창밖의 서울은 완전히 사라지고, 무한한 검은 공간만이 남았다.

"환영합니다," 네 명의 목소리가 합쳐져 울려 퍼졌다. "에스파 컴퍼니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이제 당신은 현실이 아닙니다. 당신은 코드입니다."

마지막 의식이 사라지기 전, 나는 깨달았다. 에스파 인터내셔널은 단순한 회사가 아니었다. 그것은 현실을 삼키는 디지털 블랙홀이었고, 나는 이미 그 중력장을 벗어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