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사랑의 에스파: 가상과 현실 사이
내가 사랑한 건 그녀가 아니라 그녀의 아바타였다. 깨달음은 항상 너무 늦게 찾아온다.
에스파 콘서트장을 나서는 나의 발걸음은 무거웠다. 형광봉의 잔상이 내 망막에 남아있었고, 귓가에는 여전히 그들의 노래가 맴돌았다. 특히 지민의 목소리. 그녀의 현실 버전과 아바타가 완벽하게 싱크를 맞추는 순간, 내 심장은 아득한 곳으로 추락했다. 3년간의 짝사랑이 그 순간 가상의 존재를 향한 것이었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첫 팬미팅에서 그녀의 실제 모습을 보았을 때, 나는 내가 상상했던 지민과는 다른 사람을 만났다. 그녀의 말투, 웃음소리, 심지어 걸음걸이까지. 내가 유튜브와 SNS에서 수천 번 돌려봤던 영상 속 지민은 완벽하게 계산된 아바타였다. 현실의 그녀는... 그냥 평범한 한 사람이었다.
"팬이세요?" 갑작스러운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콘서트 티셔츠를 입은 여자가 내 옆 벤치에 앉았다. 그녀의 손에도 나와 같은 지민의 슬로건이 들려있었다.
"네... 3년째요." 내 목소리는 생각보다 쉽게 떨렸다.
"저도요. 근데 이상하죠? 콘서트에서 보는 그들과 팬미팅에서 마주치는 그들이 마치 다른 사람 같다는 거..." 그녀의 말에 나는 흠칫했다. 내 생각을 읽은 듯했다.
"메타버스 시대에 우리는 어쩌면 에스파처럼 두 개의 자아를 가지고 있는지도 몰라요. 현실의 나와 SNS의 나. 당신이 좋아하는 건 어떤 나인가요?"
그 질문에 답할 수 없었다. 내가 지민에게 쓴 수백 통의 팬레터, 그녀의 생일마다 보낸 선물들, 콘서트를 위해 밤새 기차를 타고 온 오늘의 여정까지. 그 모든 것이 실제 지민이 아닌 '에스파 지민'을 향한 것이었다면?
"우리가 사랑에 빠지는 건 실체가 아니라 이미지에요. 짝사랑이란 게 원래 그런 거죠.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아바타를 사랑하고 있어요." 그녀가 일어서며 말했다.
그날 밤, 나는 지민에게 마지막 팬레터를 썼다. 지금까지 본 적 없는 진짜 그녀에게. 그리고 처음으로 '보내지 않음' 버튼을 눌렀다. 때로는 짝사랑의 가장 진실된 표현이 포기하는 것임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스마트폰 화면을 끄자 거기 비친 내 얼굴은, 어쩐지 오랜만에 보는 낯선 얼굴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