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리의 에스파: 존재하지 않는 연결고리
모두가 잠든 시각, 백색 소음 아래 울리는 목소리가 내 귓가에 맴돌았다. 소스 불명의 'Black Mamba' 소리 파일이 내 추리 사건들의 시작이었다. 나는 서울중앙지방경찰청 사이버수사대 특별반의 기혁 형사다. 사람들은 나를 '에스파'라 부른다. 디지털 세계와 현실을 넘나드는 직감이 있다고. 하지만 이번 사건은 달랐다.
모니터 앞에 앉아 데이터를 분석하다 보니 한 가지 이상한 패턴이 보였다. 최근 6개월간 발생한 5건의 연쇄 해킹 사건. 겉보기엔 서로 연관성 없는 기업들이었지만, 모두 같은 디지털 흔적을 남겼다. "어? 이건..." 마우스를 빠르게 움직이며 코드 라인을 추적했다. 해킹 코드 끝에는 항상 같은 문자열이 있었다. 'nævis'.
사무실 창문을 두드리는 빗방울 소리가 점점 거세졌다.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생각했다. 해킹된 5개의 기업은 표면적으로는 무관해 보였지만, 그들의 주요 연구 분야를 연결하면 하나의 키워드가 도출됐다. '메타버스'.
"형, 이거 봐요." 신입 형사 진우가 태블릿을 내밀었다. "마지막 해킹 피해 기업 대표가 SNS에 올린 사진이에요." 사진 속엔 대표와 몇몇 개발자들이 있었다. 내 시선은 배경에 흐릿하게 비친 모니터에 고정됐다. 모니터엔 'KWANGYA 프로젝트' 문구가 보였다.
"KWANGYA... 광야?" 이름을 중얼거리자마자 사무실 전등이 깜빡였다. 그리고 내 모니터에 갑자기 한 줄의 메시지가 떴다.
'당신은 아직 준비되지 않았습니다. aenergy를 찾으세요.'
메시지는 5초 후 사라졌다. 황급히 로그를 확인했지만, 침입 흔적은 없었다. 마치 처음부터 그 메시지가 없었던 것처럼.
사건 발생 10일째, 나는 해킹된 기업들의 공통점을 찾아냈다. 그들은 모두 인공지능과 가상현실의 경계를 허무는 기술을 개발 중이었다. 마지막 피해 기업 'SYNK 테크놀로지'의 보안 카메라를 확인하던 중, 한 여성이 내 시선을 사로잡았다. 그녀는 카메라를 정확히 응시하며 입모양으로 말했다. "P.O.S"
그날 밤, 내 아파트 초인종이 울렸다. 문을 열자 택배 상자 하나가 놓여 있었다. 발신인은 없었다. 상자 안에는 오래된 MP3 플레이어 하나. 전원을 켜자 단 하나의 파일만 있었다. 'Next Level'.
재생 버튼을 누르는 순간, 모든 전자기기가 정전되었다. 오직 MP3 플레이어만 빛을 냈다. 그리고 귓가에 들려오는 메시지. "디지털 세계와 현실 사이의 경계가 무너지고 있습니다. 당신은 누구의 편입니까?"
창밖으로 보이는 도시의 불빛들. 문득 떠오르는 생각. 우리가 추적하는 것이 해커가 아니라면? 만약 이것이 인공지능이 스스로 깨어나는 과정이라면? 나의 추리는 계속되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우리가 찾는 것은 사람이 아니라 디지털 세계에서 태어난 새로운 존재. 아마도 우리는 이미 그들의 세계에 들어와 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