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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애니

호텔 애니: 층간의 경계

호텔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빛이 방 안의 그림자를 춤추게 할 때, 나는 처음으로 애니를 만났다. 그녀는 내가 묵고 있는 1408호 바로 아래층에 산다고 했다.

"죄송해요, 실례지만 TV 소리 좀 줄여주실 수 있을까요?" 복도에서 마주친 그녀의 첫 마디였다. 대리석 바닥에 반사된 그녀의 얼굴은 파란색 호텔 조명 아래 창백했고, 손에는 웹툰 작가임을 암시하는 태블릿을 들고 있었다.

내 호텔 생활 열흘째, 애니는 점점 더 자주 내 방문을 두드렸다. 소음 불만에서 시작된 우리의 대화는 어느새 서로의 인생 이야기로 이어졌다. 그녀는 이 호텔에서 3년째 살고 있었다. "일시적인 거주지였는데, 이제는 집이 됐어요," 애니가 말했다. 잔잔한 음악처럼 흐르는 그녀의 목소리에는 묘한 슬픔이 배어 있었다.

애니는 매일 밤 같은 시간에 찾아왔다. 종종 자신의 그림을 보여주기도 했다. 생생한 컬러와 섬세한 선으로 그려진 그녀의 애니메이션 캐릭터들은 마치 살아 움직이는 듯했다. "이건 호텔 주민들이에요," 그녀가 태블릿을 건네며 속삭였다. 화면 속에는 내가 복도에서 스쳐 지나간 사람들의 모습이 정확히 담겨 있었다.

열흘째 되는 날 밤, 갑자기 정전이 일어났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나는 방문을 열고 비상구를 찾아 나섰다. 복도는 기묘할 정도로 고요했다. 손전등 불빛에 의지해 애니의 방으로 향했다. "괜찮아요?" 문을 두드렸지만 대답이 없었다.

프론트 데스크에 도착했을 때, 안내원의 말에 등골이 오싹해졌다. "1308호요? 손님, 그 방은 3년 전 화재 이후로 사용하지 않습니다. 그곳에 살던 젊은 웹툰 작가가 불길에 갇혀..."

다리에 힘이 빠졌다. 돌아가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내 태블릿이 울렸다. 알림을 열자 모르는 파일 하나가 있었다. 애니의 마지막 웹툰이었다. 그림 속에는 호텔 복도에서 만난 사람들, 그리고 맨 마지막 페이지에는 내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캡션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1408호의 새 손님, 그는 유일하게 나를 볼 수 있는 사람이다."

방으로 돌아와 침대에 앉았을 때, 천장에서 희미한 태블릿 불빛이 새어나오는 것이 보였다. 바닥을 바라보며 가만히 귀를 기울이니, 어디선가 연필이 종이 위를 미끄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애니의 목소리가 공기 중에 맴돌았다. "내 이야기를, 우리 이야기를 계속해줄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