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 에스파: 미래를 숙박하다
방 문을 열자마자 나를 반기는 건 내 이름이었다. "김소연 님, 호텔 에스파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벽면에 떠오른 홀로그램 문구가 우아하게 반짝였다. 이 호텔이 내 뇌파를 읽는다는 소문은 들었지만, 직접 경험하니 묘한 불안감이 등을 타고 올라왔다.
침대에 가방을 올려놓는 순간, 방 안에 은은한 라일락 향이 퍼졌다. 내 SNS 프로필에 적어둔 최애 향. 창문은 자동으로 어두워지며 도시의 네온사인만 선명하게 투영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호텔 에스파는 가상 아이돌 그룹 이름이었을 뿐인데, 지금은 세계에서 가장 혁신적인 호텔 체인이 되었다. 인공지능과 메타버스 기술의 집약체라는 평가가 과장이 아니었다.
"소연 님, 오늘 밤 어떤 꿈을 경험하고 싶으신가요?" 천장에서 내려온 홀로그램 메뉴가 다양한 꿈 시나리오를 제안했다. '잃어버린 첫사랑 찾기', '화성 탐험', '역사 속 인물과의 만남'... 손가락으로 '맞춤형 꿈' 옵션을 탭했다. "어제 밤에 꾸던 꿈 이어서 부탁해요."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니 별들이 반짝이기 시작했다. 눈을 감자 베개에서 미세한 진동이 느껴졌다. 호텔 에스파의 'SYNK' 기술이 내 뇌파와 동기화되는 순간이었다. 몽롱한 상태에서 내가 원했던 꿈으로 서서히 빠져들었다.
다음 날 아침, 나는 이상하게 개운한 기분으로 눈을 떴다. 호텔 룸서비스로 주문한 아침 식사가 이미 테이블 위에 준비되어 있었다. 신기한 것은 내가 주문한 적이 없다는 것. 그런데 정확히 내가 지금 먹고 싶었던 것들이었다.
체크아웃을 하려고 로비에 내려갔을 때, 직원은 희미하게 웃으며 말했다. "어떠셨나요? 꿈은 마음에 드셨나요?" 평범한 질문 같았지만, 그의 눈빛에서 이상한 의미를 읽었다. "네, 완벽했어요. 그런데 제가 어떤 꿈을 꿨는지 어떻게 아세요?" 그가 내 질문을 무시하고 영수증을 건넸다. 머물렀던 1박의 비용과 함께, '데이터 제공 동의 할인 50%' 항목이 눈에 들어왔다.
호텔을 나서는 순간, 휴대폰에 알림이 왔다. "김소연 님, 귀하의 꿈 데이터가 성공적으로 에스파 클라우드에 업로드되었습니다. 귀하의 꿈은 다른 고객들에게 프리미엄 경험으로 제공될 예정입니다."
뒤돌아보니 호텔 외벽에 거대한 디스플레이가 반짝였다. "호텔 에스파 - 당신의 꿈을 공유하세요." 그리고 그 아래로 작은 글씨: "모든 꿈은 저작권 없이 호텔 에스파의 자산이 됩니다." 이게 내가 동의한 약관의 내용이었던가? 거리를 걸으며 생각했다. 나의 가장 은밀한 꿈을 다른 사람들이 경험하게 된다면, 과연 그것은 여전히 '나의' 꿈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