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품 에스파: 가상과 현실 사이의 광채
나는 백화점 화장품 카운터 직원이 아니라 에스파토리멘터라고 불린다. 오늘도 어김없이 나를 찾는 손님이 있다. 그녀의 눈빛만 봐도 알 수 있다. 현실의 자신보다 자신의 아바타를 더 사랑하는 여자.
"이번에는 어떤 제품을 추천해 주실 건가요?" 그녀의 목소리는 기대감으로 떨린다. 스마트폰을 내밀며 자신의 아바타 애플리케이션을 보여준다. 화면 속 그녀는 현실보다 더 완벽하고, 더 빛나고, 그리고 더 행복해 보인다.
나는 특별한 화장품을 꺼낸다. '에스파 시리즈'라 불리는, 현실과 가상을 넘나드는 이 브랜드의 제품들은 사용자의 피부에 바르는 순간 디지털 세계의 아바타에도 동일한 효과를 준다. 최첨단 바이오센서와 양자 입자가 함유된 이 제품들은 출시 이후 전 세계적인 열풍을 일으켰다.
"이 제품은 '블랙 맘바'라고 해요. 피부에 바르면 현실에서의 당신과 메타버스 속 아바타가 동시에 변화합니다." 나는 그녀의 손등에 진한 보라색 크림을 발랐다. 그 순간 그녀의 스마트폰 화면 속 아바타의 피부도 미묘하게 변했다.
"와, 정말 신기해요!" 그녀는 환호성을 질렀다. 하지만 그녀는 모른다. 에스파 화장품의 진짜 효과를. 제품을 구매한 고객들이 하나둘 현실과 가상의 경계를 잃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회사의 내부 데이터에 따르면, 에스파 제품 사용자의 68%가 현실보다 가상 세계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낸다. 그리고 32%는 자신이 아바타라고 착각하는 '디지털 자아전이증'을 겪는다. 그럼에도 우리는 계속 판매한다. 아름다움을 갈구하는 이들에게.
"이걸로 할게요." 그녀는 주저 없이 카드를 내밀었다.
결제를 마친 후, 그녀에게 제품을 건네며 말했다. "사용법이 적힌 설명서를 꼭 읽어보세요." 하지만 그녀는 이미 스마트폰 화면 속 자신의 아바타를 바라보며 행복에 빠져있었다.
그날 밤, 나는 회사 데이터베이스에 접속했다. 그녀의 프로필이 빨간색으로 깜빡였다. '위험군'. 에스파 제품 사용 후 현실과 가상을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분류다. 나는 다음 날 그녀에게 연락해야 한다는 알림을 설정했다. 그리고 침대에 누웠다.
거울을 바라보니 내 얼굴이 낯설게 느껴졌다. 나도 모르게 손을 뻗어 화장대 위의 '에스파 제품: 직원용'을 집어 들었다. 오늘 밤만, 나도 잠시 아름다운 아바타가 되고 싶었다. 크림을 바르는 순간, 거울 속 내 모습이 변하기 시작했고, 현실과 가상의 경계가 희미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