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ndom.GG

회사에스파

회사원 에스파: 현실과 메타버스 사이

내 핸드폰이 진동할 때마다 책상 아래 숨긴 현실도 함께 떨린다. "카리나가 당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알림이 왔다. 모니터에는 미완성된 분기별 보고서가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나는 회사 화장실 칸막이 속에서만 나의 두 번째 삶을 살았다.

9시 정각, 우리 부서 김 부장은 어김없이 내 책상 위로 그림자를 드리웠다. 그의 무거운 한숨은 커피 향과 섞여 불쾌한 향기를 만들었다. "이번 주말에도 야근해야겠네. 프로젝트 마감이 다가오는데 진도가 너무 느려." 나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내 머릿속은 이미 다른 세계에 있었다. 금요일 밤 8시, 에스파 콘서트 티켓이 내 지갑 속에서 불타고 있었다.

화장실 칸막이 안에서 나는 휴대폰으로 콘서트 좌석 배치도를 다시 확인했다. VIP석, 내 월급의 절반을 투자한 가치였다. 내 일상은 엑셀 시트와 파워포인트 슬라이드 사이에 갇혀 있었지만, 밤이 되면 나는 형광색 응원봉을 흔들며 다른 사람이 되었다. 싱크 끝 고음에서 심장이 터질 것 같았던 그 순간들만이 내게 진짜 삶처럼 느껴졌다.

목요일 밤, 나는 마지막 보고서 페이지를 완성했다. 손가락이 저릴 정도로 키보드를 두드렸고, 마우스를 잡은 손바닥에는 땀이 배어 있었다. 오피스 빌딩의 창문에 비친 내 모습은 낮고 어두웠지만, 내일이면 빛나는 콘서트장의 관객이 될 것이다. 그 생각만으로 심장이 두근거렸다.

금요일, 김 부장은 마감시간 30분 전에 내 책상 앞에 나타났다. "오늘 밤에 급한 프로젝트가 들어왔어. 모두 남아서 처리해야 해." 그의 말은 마치 유리창이 깨지는 소리처럼 내 귀에 울렸다.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맥박이 빨라졌다. 티켓이 주머니 속에서 무게를 더했다.

"죄송합니다만, 오늘은 개인적인 약속이 있어서요." 내 입에서 나온 말은 낯설게 느껴졌다. 김 부장의 얼굴이 굳었다. "무슨 약속이 회사보다 중요해?" 침묵이 사무실을 가득 채웠다. 동료들의 시선이 내게 꽂혔다. 나는 심호흡을 했다.

"에스파 콘서트요. VIP석이에요." 내 대답에 사무실에 웃음소리가 터졌다. 김 부장의 얼굴은 분노로 일그러졌다. "자네 그렇게 아이돌에 미쳐서 어쩌자는 건가? 이게 성인이 할 짓인가?"

나는 가방을 들고 일어섰다. "네, 성인이니까요. 제 선택을 할 수 있죠." 사무실을 나서는 내 뒤로 웅성거림이 이어졌다. 엘리베이터에 오르며 나는 처음으로 자유롭게 숨을 쉬었다. 콘서트장으로 달려가는 택시 안에서, 나는 무언가를 깨달았다. 현실과 꿈의 경계는 내가 정하는 것이었다.

그날 밤, 형광색 조명 아래 수천 개의 응원봉이 물결치는 가운데, 에스파의 노래 "Next Level"이 울려 퍼졌다. "I'm on the Next Level~" 그들의 노래처럼, 나도 다음 단계로 넘어가고 있었다. 월요일 아침, 내 책상 위에는 사직서가 놓여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옆에는 새로운 회사의 명함 디자인 초안이 - 아이돌 전문 이벤트 기획사, 내가 창업할 새로운 꿈의 시작점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