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ndom.GG

MBTI자기계발

MBTI 자기계발: 거울 속 16개의 나

심리 상담실 문을 열자마자 그것이 날 기다리고 있었다. 벽에 붙은 16가지 인격 유형 차트가, 마치 내 모든 결함을 알고 있다는 듯이 형광등 아래서 빛나고 있었다. "ISTJ는 완벽주의자입니다"라는 문구가 내 눈에 꽂혔다. 그 순간 깨달았다. 나는 지난 35년간 스스로를 잘못 알고 있었다.

"윤서 씨, ISTJ 결과에 실망하신 것 같네요." 김 상담사의 목소리가 따뜻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MBTI 결과를 마치 선고문처럼 받아들이더군요."

창밖으로 가을비가 내리고 있었다. 빗방울이 유리창을 타고 흘러내리는 모습이 내 혼란스러운 생각과 닮아 있었다. 손에 쥔 종이에는 "조직적이고 책임감 있으나 변화를 두려워함"이라는 문구가 선명했다. 그동안 내가 자랑스러워했던 특성들이 갑자기 단점으로 보였다.

"이건 그저 도구일 뿐이에요. 자신을 가두는 감옥이 아니라 이해하는 창문이죠." 김 상담사는 말을 이어갔다. "요즘 자기계발서 비즈니스가 MBTI로 완전히 재편되고 있어요. '당신의 유형에 맞는 성공법', 'MBTI별 인간관계 가이드'... 하지만 그런 책들이 놓치는 게 있어요."

그녀는 서랍에서 작은 거울을 꺼내 내게 건넸다. "이것을 보세요. 무엇이 보이나요?"

"제 얼굴이요." 내가 답했다.

"정확히요. ISTJ가 보이진 않죠? 네 글자가 아니라 살아 숨쉬는 한 사람이 보이는 거예요. 윤서 씨, MBTI는 지도일 뿐, 영토가 아니에요."

그 순간 머릿속에서 무언가 딸깍 소리를 냈다. 나는 지난 6개월간 'ENFP처럼 행동하기' 워크숍에 돈을 쏟아붓고, '당신의 MBTI로 성공하는 법' 같은 책을 밤새워 읽으며 스스로를 바꾸려 애썼다. 그런데 그것은 마치 오른손잡이가 왼손으로 글씨 쓰는 법을 배우는 것처럼 부자연스럽고 고통스러웠다.

"진정한 자기계발은 다른 사람이 되는 게 아니라, 자신의 고유한 강점을 찾아 키우는 거예요. ISTJ라는 건 당신이 가진 타고난 도구 세트일 뿐이죠. 그걸 어떻게 사용할지는 전적으로 당신 몫이에요."

빗소리가 점점 작아지고 있었다. 창문으로 햇빛이 비치기 시작했다. 내 손에 쥐어진 종이가 더 이상 무겁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런데요," 김 상담사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제가 보기엔 윤서 씨는 ISTJ가 아닌 것 같아요. 테스트 결과라는 건 그날의 기분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으니까요."

집으로 돌아오는 길, 서점 앞을 지나다 '당신의 MBTI 유형으로 성공하는 법'이란 책을 봤다. 웃음이 나왔다. 책장을 넘기면 16가지 답이 있을 것만 같았던 그 책이, 이제는 그저 16개의 출발점을 제안하는 것처럼 보였다. 내 손에 쥐어진 것은 지도였고, 어디로 가야 할지 정하는 건 온전히 나의 몫이었다. 거울 속에 비친 내 얼굴에는 네 글자가 아닌, 무한한 가능성이 담겨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