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의 포켓몬: 내가 너를 선택했다
고백을 할 때마다 내 입에서는 포켓몬이 튀어나왔다. 처음엔 피카츄였다. 고등학교 1학년, 첫사랑 민지에게 "좋아해"라고 말하는 순간 내 입에서 노란 전기 쥐가 튀어나와 그녀의 교복을 그을렸다. 민지는 비명을 지르며 도망쳤고, 다음날부터 학교에서 '포켓몬 괴물'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그건 유전병이야." 할아버지는 내 어깨를 토닥이며 말했다. "우리 가문 남자들은 진심을 담은 고백을 할 때마다 포켓몬이 나타난다네. 네 마음이 깊을수록, 더 강한 포켓몬이 나오지." 그때 할아버지의 흐릿한 눈에 그리움이 어렸다. "할머니에게 청혼했을 때는 내 입에서 뮤츠가 튀어나왔지. 그녀는 도망가지 않았어."
대학생이 된 나는 2년 동안 입을 굳게 다물었다. 호감 가는 여자가 있어도 다가가지 않았다. 그러다 동아리에서 만난 지수, 그녀의 웃음소리가 작은 방울새처럼 경쾌했다. 도서관에서 우연히 마주친 날, 그녀가 읽고 있던 책은 '포켓몬 도감 완전판'이었다.
"혹시... 포켓몬 좋아해?" 내가 물었다.
지수의 눈이 반짝였다. "어렸을 때부터 최애야. 특히 파이어도 좋아해. 왜?"
그 순간 내 심장이 마구 뛰었다. 지수에게 고백하면 어떤 포켓몬이 나올까? 파이어가 나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것도 완벽한 타이밍이었다.
봄날, 벚꽃이 흩날리는 캠퍼스 산책로에서 용기를 냈다. "지수야, 사실 널 처음 봤을 때부터 좋아했어..." 내 입안에서 무언가 꿈틀거렸다. 이번엔 무엇이 나올까? 피카츄? 아니면 파이어? 눈을 꼭 감았다.
그런데 예상과 달리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왜 그래? 괜찮아?" 지수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혼란스러웠다. 포켓몬이 없다는 건 내 마음이 진심이 아니라는 의미일까? 아니면 저주가 풀렸을까?
"그게..." 다시 말을 하려는 순간, 갑자기 지수의 입에서 푸른빛이 번쩍였다. 눈부신 빛 속에서 한 마리의 포켓몬이 나타났다. 작고 파란, 꼬리에 불꽃이 타오르는 꼬마돌이었다.
지수는 당황한 듯 입을 가렸다. "미안해... 나도 이럴 줄 몰랐어."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다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다. 모든 게 명확해졌다. 우리 집안만의 저주가 아니었던 것이다. 어쩌면 서로를 향한 진심은 늘 무언가를 탄생시키는 것인지도 모른다.
지금 우리 거실 수족관에는 그날의 꼬마돌이가 헤엄치고 있다. 가끔 시간이 날 때면, 지수와 나는 새로운 포켓몬을 만들어내기 위한 진심 어린 고백을 주고받는다. 어제는 처음으로 쌍둥이 피츄가 태어났다. 우리가 함께 만든, 어쩌면 앞으로 태어날 아이들의 수호신이 될지도 모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