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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포켓몬

이별의 포켓몬: 마지막 배틀

그녀가 내 옆구리에 놓인 낡은 포켓몬 카드 앨범을 슬쩍 밀어내는 순간, 이별이 시작됐다는 걸 알았다. 내 인생의 열 번째 봄, 첫사랑과의 마지막 날이었다.

"이제 그만 어린애 같은 짓 하면 안 돼? 우리 이제 초등학교 졸업이라고." 소율이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날카로웠다. 창문 너머로 벚꽃이 흩날리는 운동장이 보였다. 봄바람은 우리의 마지막 대화를 산산조각 내어 흩뜨려 놓는 것 같았다.

앨범을 집어들었다. 포켓몬 카드를 모으기 시작한 건 소율이를 만난 후였다. 그녀가 좋아하는 피카츄 카드를 구하기 위해 석 달간 용돈을 모았던 기억, 내 생일날 그녀가 깜짝 선물로 준 홀로그램 리자몽 카드의 반짝임이 아직도 선명했다. 카드 뒷면에 적힌 글씨. "우리, 포켓몬처럼 함께 진화하자!"

"나... 중학교 가면 포켓몬 그만둘 거야?"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소율이는 대답 대신 창밖을 바라봤다. 그때 난 처음으로 깨달았다. 어른이 된다는 건 좋아하는 것들과 작별하는 과정인지도 모른다는 것을.

"포켓몬스터에서 진화는 이별이기도 해. 이상해씨가 이상해풀이 되면, 이상해씨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잖아. 진화는 성장이지만, 동시에 예전 모습과의 작별이기도 해." 내가 중얼거렸다.

소율이의 눈이 커졌다. "너 갑자기 왜 그렇게 어른스러운 말을 해?"

우리는 웃었다. 마지막으로 함께 웃은 순간이었다.

그날 집에 와서 앨범을 열었다. 그동안 모은 카드들이 시간 순서대로 정리되어 있었다. 맨 앞의 흔한 피카츄 카드부터 마지막의 희귀한 뮤투까지. 마치 소율이와의 관계처럼 점점 깊어지고 특별해졌던 추억의 기록이었다.

나는 앨범의 마지막 페이지에 빈 카드 슬리브를 하나 더 추가했다. 거기에 소율이와 찍은 사진을 넣었다. 그리고 볼펜으로 포켓몬 카드처럼 꾸몄다. '소율이, 타입: 첫사랑, 특성: 영원한 기억'

15년 후, 옷장 정리를 하다 그 앨범을 다시 발견했다. 이제는 국제 포켓몬 카드 대회 심사위원이 된 나는 그 오래된 앨범을 조심스레 열었다. 소율이의 '카드'를 보는 순간, 핸드폰이 울렸다. 낯선 번호였다.

"안녕, 기억나? 나 소율이야. 시내 포켓몬 카드샵에서 네 이름을 봤어. 내 아들이 포켓몬에 미쳐서... 혹시 처음 시작하는 아이에게 좋은 카드 추천해줄 수 있을까?"

창문 밖으로 벚꽃이 흩날렸다. 어쩌면 이별은 끝이 아니라 또 다른 형태의 진화였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