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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사친영화

남사친의 영화: 우리가 만든 이야기

"필름 속에서는 모든 것이 가능해. 네가 말한 그 남사친도." 할아버지의 말씀이 귓가에 맴돌았다. 오래된 8mm 필름 카메라를 손에 쥐고 있으니, 그 무게만큼 무거운 기억들이 내 어깨를 짓눌렀다.

윤우는 내 인생의 가장 완벽한 남사친이었다. 열일곱 살 여름, 우리는 함께 단편영화를 만들겠다고 야심찬 계획을 세웠다. 방과 후 동네 구석구석을 누비며 그의 낡은 캠코더로 이것저것 담았다. 그의 눈빛이 카메라 렌즈보다 더 선명하게 세상을 담아내는 것 같았다. 새벽녘 강가에서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장면을 찍기 위해 밤을 새우던 날, 그의 어깨에 기대어 잠이 들었던 것까지는 친구의 경계를 넘지 않았다.

"이거, 너무 뻔한 스토리 아냐?" 그가 웃으며 내 시나리오를 흔들었다. 소년과 소녀가 친구에서 연인이 되는 이야기였다. "현실에서는 남사친은 그냥 영원한 남사친일 뿐이야." 그의 말에 웃음으로 답했지만, 가슴 한쪽이 쓰라렸다.

우리의 영화는 완성되지 못했다. 윤우의 갑작스러운 이사로 촬영분은 그대로 남겨진 채 편집되지 못했다. 그리고 연락은 자연스레 끊겼다. 대학, 취업, 결혼... 삶은 그렇게 흘러갔다.

그리고 오늘, 할아버지가 돌아가시며 남긴 이 오래된 카메라를 정리하다 발견한 한 통의 필름 캔. 라벨에는 희미하게 '윤우와 지은, 여름 1998'이라고 적혀 있었다.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이건 분명 우리가 찍었던 그 영화의 필름이 아닌가.

어두운 방에서 벽에 영사된 화면을 바라보며 나는 숨을 멈췄다. 하지만 내가 본 것은 우리가 함께 찍었던 영화가 아니었다. 그것은 윤우가 나를 찍은 영상들이었다. 웃고 있는 나, 책을 읽는 나, 졸고 있는 나... 그리고 마지막 장면, 강가에서 잠든 내 모습을 찍으며 그가 속삭이는 소리.

"사랑해, 지은아. 근데 남사친으로만 남는 게 우리에게 최선일 것 같아."

영상은 거기서 끝났다. 그가 떠나기 전 날 밤이었다. 내가 모르는 사이에 윤우는 자신만의 영화를 완성했던 것이다. 그리고 할아버지는 그것을 알고 있었다.

창가에 앉아 카메라를 들어올렸다. 렌즈를 통해 보는 세상은 언제나 다르게 보인다. 어쩌면 우리는 모두 자신만의 영화를 만들며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내일, 나는 윤우를 찾아 나설 것이다. 스물다섯 년이 지났지만, 우리의 영화는 아직 끝나지 않았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