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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영화

연애 영화: 우리가 쓰는 각본

"인생이 영화라면, 당신은 내 각본의 최악의 플롯홀이에요." 그녀의 마지막 문자를 읽으며 나는 서울의 어느 작은 카페에 앉아 있었다. 창밖으로 내리는 비는 마치 누군가 특수효과를 과하게 사용한 멜로영화의 이별 장면 같았다.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영화 각본가였다.

유진과 처음 만난 것은 영화제 뒤풀이 자리였다. 그녀는 내 단편 영화에 대해 "너무 뻔한 전개"라며 냉정한 평을 남긴 평론가였다. 그 솔직함에 반해버렸다. 연애 영화의 클리셰처럼, 우리는 서로 미워하던 사이에서 사랑에 빠졌다. 첫 키스는 한강변 벤치에서, 마치 내가 쓴 각본처럼 완벽한 타이밍에 터졌다.

6개월 동안, 우리는 서울의 골목골목을 누비며 영화 같은 장면들을 만들어갔다. 그녀는 내 영화의 첫 번째 관객이었고, 나는 그녀의 평론의 첫 독자였다. 하지만 영화와 현실의 차이점은, 영화에선 감독이 "컷"을 외치면 모든 게 끝나지만, 현실의 아픔은 계속된다는 것이다.

문제는 내가 그녀의 삶을 각본처럼 통제하려 했다는 데 있었다. "이 장면에선 이렇게 반응해야 더 아름다워"라고 말하던 내 모습이 떠오른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그녀를 사랑한 게 아니라 내가 꿈꾸던 영화 속 히로인을 사랑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녀가 떠난 후, 나는 우리의 추억이 담긴 장소들을 다시 찾아다녔다. 영화의 장면들을 되감기하듯. 그럴 때마다 내 머릿속에선 다른 결말을 상상했다. 만약 내가 이 대사를 말했다면, 저 행동을 하지 않았다면... 하지만 현실에는 리허설이나 다시 찍기가 없었다.

오늘, 그녀의 신작 평론집이 출간되었다. 마지막 페이지에는 내 이름이 언급되어 있었다. "가장 사랑했던 각본가에게: 당신이 쓴 우리의 이야기는 완벽했지만, 나는 내 삶의 주인공이 되고 싶었다." 그 문장을 읽는 순간, 처음으로 내가 영화와 현실을 혼동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카페를 나서며 우산을 펼쳤다. 비는 그쳤지만, 습관처럼 우산을 들었다. 마치 영화 속 마지막 장면을 연출하듯. 그리고 문득 깨달았다. 진짜 연애는 미리 쓰여진 영화가 아니라, 즉흥적으로 함께 써나가는 각본 없는 여정이라는 것을. 이제 나는 새 영화를 준비한다. 제목은 '우리가 사랑이라 부르는 것들에 관하여'. 그리고 이번엔, 결말을 미리 정하지 않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