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어트와 사랑: 체중계 위의 진심
그녀의 일기장에는 숫자만 가득했다. 69.8kg, 68.5kg, 67.2kg... 내림차순으로 줄지어 있는 숫자들 사이에 괄호 안의 작은 글씨들. (오늘도 참았다), (조금만 더), (그가 날 사랑할까?).
민지는 체중계 위에 올라서며 숨을 들이마셨다. 디지털 숫자가 깜빡이는 2초가 영원처럼 느껴졌다. 65.4kg. 일주일 만에 500g 감량. 그녀는 작은 승리를 맛보며 거울 앞에 섰다. 여전히 맘에 들지 않는 허벅지와 팔뚝을 손가락으로 집어보았다. 손가락 사이로 흐르는 살점이 그녀에게는 몸에 단 쇠사슬처럼 느껴졌다.
"민지야, 오늘 저녁 어때?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 현우의 카톡이 왔다. 그녀는 아침에 먹은 사과 반 개와 점심의 닭가슴살 샐러드를 떠올렸다. 저녁까지 굶을 계획이었다. 거절하고 싶었지만, 6개월 동안 사귄 남자친구의 초대를 또 거절하기가 망설여졌다.
"좋아. 어디로 갈까?" 타이핑하며 그녀는 이미 머릿속으로 메뉴판을 스캔하고 있었다. 샐러드, 드레싱 없이. 물. 혹시 디저트를 시키자고 하면 '배가 불러서' 라고 말하자.
식당에서 그녀는 습관적으로 메뉴의 칼로리를 계산했다. 현우는 스테이크를 주문했고, 그녀는 예상대로 샐러드를 골랐다.
"민지야, 요즘 너무 말랐어. 괜찮아?" 현우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물었다.
"응? 아직 멀었어. 5kg은 더 빼야 해." 그녀는 포크로 상추를 집어들며 대답했다.
"왜 그렇게 다이어트에 집착해? 난 네가 지금 모습 그대로 예뻐."
그 말이 진심인지 의심하며 민지는 웃음으로 얼버무렸다. 현우의 전 여자친구는 모델이었다. 그녀의 인스타그램에는 여전히 그들의 사진이 남아있었다. 마른 팔로 현우의 어깨를 감싸고 있는 완벽한 몸매의 여자.
식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현우는 갑자기 차를 길가에 세웠다. 봄비가 유리창을 타고 흘러내렸다.
"이거, 너 주려고 샀어." 그가 작은 상자를 건넸다.
민지는 조심스레 포장을 풀었다. 그 안에는 그녀의 일기장과 똑같은 크기의 빈 노트가 있었다. 첫 페이지에는 현우의 필체로 적힌 글이 있었다.
"숫자보다 중요한 것들을 위한 공간. 우리의 추억, 너의 꿈, 네가 웃었던 순간들... 내가 사랑하는 건 그런 것들이야."
그녀의 눈에서 뜨거운 것이 흘러내렸다. 민지는 처음으로 깨달았다. 그녀가 몇 달 동안 줄이려 했던 건 체중만이 아니었다. 그녀는 자신의 웃음, 식욕, 열정, 자존감까지 함께 줄이고 있었다. 체중계 숫자가 내려갈수록 그녀의 세계는 더 작아지고 있었다.
그날 밤, 그녀는 새 노트의 첫 페이지를 넘겨 두 번째 페이지에 글을 썼다. "오늘 저녁, 스테이크 맛있었다. 현우와 함께했던 식사 중 최고." 그리고 체중계를 욕실 선반 맨 위로 치워버렸다. 숫자들이 모든 것을 말해주진 않는다는 걸, 사랑은 그보다 훨씬 무거운 것임을 그녀는 이제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