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드게임 패션: 체스판 위의 런웨이
"인생은 체스와 같아. 단지 내 옷이 더 화려할 뿐이지." 할머니는 빨간 립스틱을 완벽하게 바르며 항상 그렇게 말씀하셨다. 그날도 나는 할머니의 소중한 빈티지 체스 세트를 들고 할머니의 아파트로 향했다. 오십 년 전 패션 디자이너였던 할머니는 여전히 모든 행사에 과감한 색상과 패턴으로 시선을 사로잡았다.
할머니의 거실은 늘 그랬듯 향수와 라벤더 향이 뒤섞인 채 나를 반겼다. 벽에는 할머니가 디자인했던 드레스들의 스케치가, 선반에는 다양한 보드게임들이 빼곡했다. 그곳에서 할머니는 언제나처럼 화려한 터번을 두른 채 나를 기다리고 계셨다.
"오늘은 특별한 게임을 하자." 할머니가 신비로운 미소를 지으며 말씀하셨다. 체스판을 펼치자 일반적인 흑백 말들 대신 각각의 피스가 미니어처 마네킹 형태로, 다양한 시대의 화려한 의상을 입고 있었다. 퀸은 1950년대 디올의 뉴룩을, 비숍은 샤넬의 트위드 슈트를, 나이트는 생로랑의 르 스모킹을, 폰들은 각기 다른 스트리트 패션을 입고 있었다.
"이건..." 내가 말을 잇지 못하자 할머니가 웃으셨다.
"내 커리어와 인생을 담은 체스야. 각 피스는 내가 만났던 패션계의 인물들을 닮았지. 그들과의 경쟁, 협력, 그리고 전략을 잊지 않기 위해 만들었어."
우리는 게임을 시작했다. 할머니는 매 수를 둘 때마다 그 피스와 연관된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퀸을 움직이며 파리 패션위크에서 자신의 첫 컬렉션을 선보였던 순간을, 나이트를 희생시키며 큰 클라이언트를 경쟁자에게 빼앗겼던 실패를, 폰을 퀸으로 승급시키며 무명에서 스타 디자이너가 되었던 조수의 이야기를.
"체크메이트." 할머니가 나지막이 말씀하셨다. 나는 어느새 패배한 채로 넋을 잃고 할머니의 이야기에 빠져있었다.
"패션도 보드게임도 결국 같은 거란다. 규칙 안에서 창의성을 발휘하고, 상대의 다음 수를 예측하고, 때로는 과감하게 희생하는 법을 배우는 것." 할머니는 터번을 살짝 고쳐 쓰며 말씀하셨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일 년 후, 유품 정리를 하다가 발견한 할머니의 일기장에는 놀랍게도 체스판의 64칸마다 할머니 인생의 중요한 순간들이 기록되어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 페이지에는 내게 남긴 메시지가 있었다.
"인생이라는 보드게임에서, 네가 어떤 피스가 되든 중요한 건 스타일이야. 남들과 똑같이 움직이더라도, 네가 입은 옷처럼 네 방식으로 빛나렴."
이제 그 특별한 체스 세트는 내 작업실에 놓여있다. 패션 디자이너가 된 나는 매 컬렉션을 시작하기 전, 할머니와의 한 판을 두며 영감을 얻는다. 체스판 위에서 퀸이 움직일 때마다, 난 할머니의 붉은 립스틱이 반짝이는 것을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