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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포켓몬

비밀 포켓몬: 할머니의 마지막 선물

할머니가 남긴 상자에는 "내가 떠난 뒤에 열어라"라는 노란 메모지가 붙어 있었다. 장례식을 마치고 혼자 남은 첫날, 나는 그 상자를 무릎 위에 올려놓았다. 무거웠다. 여덟 살 생일에 할머니가 선물했던 포켓몬 피규어들이 들어있을까, 아니면 할머니의 수많은 '이야기' 중 하나를 담고 있을까. 손끝이 떨렸다.

상자 안에는 낡은 게임보이 컬러와 포켓몬스터 카트리지가 있었다. 그리고 할머니 특유의 둥글둥글한 글씨체로 쓰인 편지 한 장. "내 비밀의 세계로 초대할게. 끝까지 가보렴." 할머니는 포켓몬 게임을 했던 적이 없었다. 적어도 내가 아는 한.

게임을 켰다. 이미 저장된 데이터가 있었다. 주인공의 이름은 'NANA', 할머니의 영어 별명이었다. 150시간. 할머니는 이 게임을 150시간이나 했던 걸까?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포켓몬 리스트를 열자 완벽하게 151마리가 모두 채워져 있었다. 심지어 전설의 포켓몬 뮤까지.

PC 박스에는 이름이 붙은 포켓몬들이 가득했다. 'DAD'라는 이름의 리자몽, 'MOM'이라는 이름의 이상해꽃, 그리고 내 생일과 같은 날짜로 명명된 픽시. 할머니는 자신의 인생을 이 작은 디지털 세계에 옮겨놓은 듯했다. 각 포켓몬의 획득 장소와 날짜가 우리 가족의 중요한 순간들과 일치했다. 할아버지와의 첫 데이트 날짜에 잡은 피카츄, 아빠가 태어난 날의 푸린, 내가 입원했던 그해 겨울의 라프라스.

그러다 발견했다. 'SECRET'이라는 이름의 딱 하나의 포켓몬이 따로 보관되어 있었다. 수준 100의 뮤. 상태창을 열자 메시지가 있었다. 포켓몬이 지닌 아이템란에 '편지를 읽어'라고 적혀 있었다.

상자를 다시 살폈다. 구석에 숨겨진 또 다른 편지를 발견했다. "포켓몬 세계는 내가 너무나 아팠을 때 나의 탈출구였단다. 주치의가 1년을 넘기기 어렵다고 했던 그때, 나는 이 작은 세계에서 너와 함께할 미래를 상상했어. 결국 의사의 예상보다 15년을 더 살았지. 내 포켓몬들처럼, 어떤 한계도 운명이 될 필요는 없단다."

눈물이 볼을 타고 흘렀다. 게임 화면을 다시 들여다보자 뮤가 춤을 추듯 화면을 맴돌고 있었다. 방 안에 할머니의 웃음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서랍에서 충전기를 찾아 게임보이를 연결했다. 할머니의 비밀 세계가 꺼지지 않도록. 그리고 나도 내 자신만의 비밀 포켓몬을 만들어갈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