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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귀신

사랑의 귀신: 잊혀진 약속

그녀가 돌아왔다는 것을 알게 된 건 방 안에 퍼진 라일락 향기였다. 동이 트기 전 새벽 서리가 맺힌 창문을 통해 들어온 희미한 달빛 아래, 미영은 침대 끝에 앉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살아있을 때와 똑같은 하얀 원피스, 검은 머리카락, 그리고 슬픔이 가득한 눈동자. 오직 그녀만이 풍기던 그 향기가 방 안을 가득 채웠다.

"약속했잖아, 기다리겠다고." 그녀의 목소리는 바람에 흔들리는 풀잎처럼 가녀렸다. 나는 침대에서 일어나 앉았다. 공포보다는 죄책감이 더 컸다. 다섯 해 전, 그녀가 세상을 떠나던 날 우리는 약속했다. 내가 그녀를 결코 잊지 않겠다고.

방 안의 온도가 급격히 내려갔다. 창문을 닫았는데도 어디선가 찬 바람이 불어와 내 뼛속까지 시려왔다. 미영의 형체는 달빛 아래에서 반투명하게 일렁였다. 그녀의 눈에서 검은 눈물이 흘러내렸다.

"다른 사람을 만났어." 내 고백은 너무 솔직했다. 떨리는 손으로 서랍을 열어 작은 벨벳 상자를 꺼냈다. 내일 프러포즈할 예정이었다. "미안해, 미영아. 나도 계속 살아야 했어."

그녀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방 안의 물건들이 진동하기 시작했고, 책상 위 사진액자가 바닥으로 떨어져 산산조각 났다. 우리의 마지막 사진이었다. "사랑은 죽음을 넘어선다고 했잖아!" 그녀의 비명은 귓가를 찢을 듯했다.

미영의 형체가 점점 어두워졌다. 라일락 향기는 이제 썩은 흙냄새로 변해갔다. 나는 그제야 알았다. 내가 만난 것은 사랑의 기억이 아니라, 버려진 약속의 원망이라는 것을. 그녀는 내 기억 속에 있던 미영이 아니었다. 내 죄책감과 두려움이 만든 귀신이었다.

"널 사랑했어, 정말로. 하지만 이젠 보내줘야 해." 내 손이 그녀의 차가운 뺨에 닿았다. 순간 그녀의 눈에서 분노가 사라지고 슬픔만이 남았다. "우리의 약속은 서로를 행복하게 하는 거였어. 내가 행복해지는 걸 지켜봐줘."

미영의 형체가 흔들리더니 서서히 흩어지기 시작했다. 라일락 향기가 다시 방 안을 채웠다. 그녀의 입술이 마지막으로 움직였다. '행복하길.'

날이 밝아오자 방 안은 다시 평온을 되찾았다. 깨진 액자를 주웠을 때, 사진 뒷면에 미영의 글씨가 보였다. '사랑은 소유가 아니라 놓아주는 것'. 창문 밖으로 따스한 봄바람이 불어왔고, 어디선가 라일락 향기가 희미하게 느껴졌다. 그날 밤 이후, 그녀는 다시 나타나지 않았지만, 가끔 내 행복한 순간마다 어디선가 라일락 향기가 잠시 스쳐 지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