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ndom.GG

사랑보드게임

사랑의 보드게임: 우리가 던진 주사위

사랑이란 결국 보드게임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 건 그가 떠난 뒤였다. 우리 아파트 거실 책장에는 아직도 그의 보드게임 컬렉션이 그대로 꽂혀 있다. 먼지 쌓인 박스들이 나를 바라보는 듯한 느낌에 오늘도 덮개를 열었다. 카드를 섞는 소리, 주사위 굴리는 소리, 그의 웃음소리가 방 안에 울려 퍼지는 환청이 들린다.

"이번엔 내가 이길 거야." 그가 말했던 그 자신감 넘치는 미소가 아직도 선명하다. 우리는 '판도라의 상자'라는 게임을 하고 있었다. 그는 항상 이 게임을 좋아했다. 모든 플레이어가 자신만의 전략을 짜고, 자원을 모으고, 때로는 동맹을 맺고, 때로는 배신하는 게임. 삶과 너무 닮아 있어서 무서울 정도였다.

주사위를 굴릴 때마다 그의 눈동자가 반짝였다. 게임판 위에서 우리는 서로의 영토를 침범하고, 자원을 빼앗고, 때로는 협력했다. 그의 손가락이 말을 움직일 때면 나는 그의 전략을 읽으려 애썼다. 하지만 사랑도 보드게임처럼 모든 수를 예측할 수는 없었다.

"인생은 주사위 한 번에 달려있어." 그가 자주 하던 말이다. 우리의 첫 만남도 대학 동아리 보드게임 대회에서였다. 그때 그는 내게 져주었다고 훗날 고백했다. 나를 다시 만나기 위한 그만의 전략이었다고. 우리는 그렇게 게임판 위에서 만났고, 게임처럼 삶을 살았다.

그러나 어느 날, 그는 예고 없이 자신의 말을 게임판에서 거두었다. "더 이상 게임을 할 수 없어"라는 짧은 메시지만 남기고. 나는 그제서야 깨달았다. 우리의 사랑이 그에게는 단순한 게임이었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승리와 패배, 전략과 술수가 있는 보드게임.

오늘 나는 오랜만에 혼자서 '판도라의 상자'를 펼쳤다. 그와 함께했던 수많은 밤을 기억하며, 혼자서 두 사람의 역할을 했다. 내 차례, 그의 차례. 주사위를 굴리고, 말을 움직이고.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보드게임의 가장 중요한 규칙은 끝까지 플레이하는 것이라는 걸. 중간에 게임을 포기한 사람은 이미 패배한 것이라는 걸.

게임을 접으며 생각했다. 사랑은 보드게임과 다르다. 게임에는 명확한 승자와 패자가 있지만, 사랑에는 없다. 게임은 끝이 있지만, 진짜 사랑은 끝나지 않는다. 단지 형태가 바뀔 뿐. 그가 남긴 보드게임들을 정리하면서, 나는 마지막 카드를 뒤집었다. '새로운 게임을 시작하시겠습니까?'

창가에 앉아 주사위를 손에 쥐고 있자니, 이제는 혼자서도 게임을 즐길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아마도 다음번에 누군가와 함께 이 게임을 할 때는, 내가 규칙을 가르쳐줄 수 있을 것이다. 사랑과 보드게임의 가장 중요한 규칙을. 주사위를 던지는 순간, 무엇이든 가능하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