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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호텔

호텔의 이름으로 사랑을

매일 밤 그는 201호실에 침대를 펴놓을 때마다 그녀의 이름을 속삭였다. 20년간 전설적인 호텔리어로 살아온 김준호에게 '파라다이스 호텔'은 집이자 첫사랑이었다. 불가능한 요청도 가능하게 만드는 그의 손길은 마법 같았지만, 아무도 그가 매일 밤 특별한 의식을 치른다는 걸 몰랐다.

"오늘도 201호에 꽃 한 송이 더 두셨네요," 새로 온 청소부 미나가 궁금해했다. "투숙객도 없는데 말이에요."

준호는 미소만 지었다. 20년 전 그날, 아직 견습생이었던 그가 첫 담당한 객실이 201호였다. 그리고 그곳에서 만난 하유미는 폭풍우처럼 그의 삶을 휩쓸고 지나갔다. 지금도 기억한다. 유미의 머리카락에서 풍기던 라벤더 향, 웃을 때마다 왼쪽 볼에 생기던 작은 보조개, 그리고 마지막 밤 그녀가 남긴 쪽지.

"3월 15일, 다시 이곳에서 만나요."

하지만 유미는 돌아오지 않았다. 1년, 5년, 10년... 준호는 매년 3월 15일이면 201호를 비워두었다. 호텔이 리모델링되고, 소유주가 바뀌고, 심지어 이름까지 변해도 201호만은 그대로였다. 그리고 오늘은 20번째 3월 15일이었다.

"김 지배인님, 어떤 여성분이 201호 예약 확인차 전화하셨어요." 프런트의 정 과장이 말했다. 준호의 심장이 멈췄다가 다시 뛰기 시작했다. 그는 손목시계를 확인했다. 오후 3시 15분.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밖은 20년 전 그날처럼 비바람이 몰아쳤다. 로비의 크리스털 샹들리에가 부드럽게 흔들렸고, 대리석 바닥에 떨어진 빗방울들이 작은 별처럼 반짝였다. 그때 그녀가 회전문을 통해 들어왔다.

처음엔 그녀를 알아보지 못했다. 세월의 흔적이 그녀의 얼굴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녀가 웃자, 왼쪽 볼에 나타난 보조개를 보았다. 그리고 그녀의 손에는 라벤더 한 송이가 들려있었다.

"늦어서 미안해요, 준호 씨." 유미의 목소리는 20년 전과 달라지지 않았다. "설명할 게 많아요."

그날 밤, 201호실에서 그들은 20년의 시간을 채워나갔다. 파리에서 의사로 일하며 국경없는의사회로 전 세계를 돌아다닌 유미의 이야기, 그리고 20년간 한 자리를 지키며 그녀를 기다린 준호의 삶. 두 사람의 이야기는 밤새도록 이어졌다.

"왜 연락하지 않았어?" 준호가 마침내 물었다.

유미는 창가로 걸어가 비에 젖은 도시의 불빛을 바라보았다. "내가 약속을 지키지 못한 이유를..." 그녀의 손에서 오래된 편지 한 통이 나왔다. 준호의 필체였다. 하지만 그는 그런 편지를 쓴 기억이 없었다.

아침이 밝아올 무렵, 유미는 다시 떠나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이번엔 다른 약속을 남겼다. 한 달 후에 돌아와 함께 떠나자고. 그리고 준호는 처음으로 201호실의 열쇠를 내려놓을 결심을 했다. 때로는 사랑이란 기다림이 아니라 함께 떠나는 용기임을, 20년의 세월 끝에 그는 비로소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