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과 요리의 맛: 기억을 담는 그릇
할머니가 돌아가시던 날, 내 손에는 오래된 폴라로이드 사진 한 장과 음식 얼룩이 묻은 레시피 노트가 남았다. 사진 속 할머니는 부엌에서 미소 짓고 계셨고, 그 뒤로 김이 모락모락 나는 냄비가 희미하게 보였다.
나는 요리를 싫어했다. 정확한 계량과 타이밍에 맞춰야 하는 요리의 세계는 내게 강제된 질서와 같았다. 사진작가로서 나는 순간을 포착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내 사진들은 갤러리에 걸렸고, 사람들은 내 작품에 감탄했지만, 집에 돌아오면 언제나 배달음식으로 허기를 달랬다.
"음식은 기억을 담는 그릇이란다." 할머니의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폴라로이드를 들여다보니 할머니가 만들던 음식이 무엇인지 궁금해졌다. 레시피 노트를 펼쳤고, 퇴색된 잉크 사이로 '도라지 갈비탕'이라는 글씨가 보였다.
시장에서 재료를 사 와 할머니의 레시피를 따라 요리를 시작했다. 도라지 향이 부엌에 퍼지자 어린 시절 기억이.예상치 못하게 밀려왔다. 할머니의 집, 아픈 날 할머니가 끓여주시던 갈비탕, 그리고 친구들과 나눠 먹던 순간들.
카메라를 꺼내 재료들을 찍기 시작했다. 칼로 썰린 도라지의 단면, 거품을 내며 끓는 국물, 완성된 갈비탕에 떨어지는 빛. 내 시선으로 바라본 할머니의 요리 과정이 프레임 안에 담겼다. 음식을 한 숟가락 떠 입에 넣자, 뜨거운 국물과 함께 어린 시절의 감정이 온몸으로 퍼져나갔다.
사진을 현상하고 갈비탕 옆에 놓아보았다. 이상하게도 서로 닮아 있었다. 내 사진이 순간을 포착한다면, 할머니의 요리는 시간을 담아냈다. 둘 다 기억을 저장하는 방식이었다.
그날 이후 나는 요리할 때마다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재료의.질감, 조리 과정의 변화, 완성된 요리의 모습까지. 사진작가의 시선으로 요리를 바라보자, 강제된 질서가 아닌 창의적인 표현으로 다가왔다. 내 전시회의 주제는 '맛의 기억'이 되었고, 사진 옆에는 직접 만든 요리가 함께 전시되었다.
사람들은 내 사진과 요리를 함께 경험하며 자신들의 기억을 꺼내놓기 시작했다. "이 국물 맛이 할머니를 떠올리게 해요," "이 사진에서 어머니의 손길이 느껴져요."
할머니의 폴라로이드를 손에 쥐고 부엌에 서있는 나를 누군가 찍었다면, 그 사진은 할머니의 것과 얼마나 닮았을까. 오늘도 나는 카메라를 한 손에, 국자를 한 손에 들고 있다. 렌즈의 초점을 맞추듯 음식의 간을 맞추며, 두 세계 사이의 경계에서 기억을 담아내는 법을 배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