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친의 영화: 우리가 만든 가상의 세계
그녀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건 내가 우리의 마지막 영화를 편집하고 있을 때였다. 스마트폰 화면에 떠오른 부재중 전화는 그녀의 엄마였다. 통화 버튼을 누르자마자 들려온 흐느낌 소리에 나는 직감했다. 내 여자친구는 더 이상 이 세상에 없다는 것을.
지영이와 나는 영화학도였다. 한 학기에 하나씩, 우리는 서로의 주연이 되어주는 단편영화를 만들었다. 카메라 렌즈를 통해 우리는 서로를 더 깊이 알아갔다. 그녀의 눈가에 생기는 작은 주름, 웃을 때 살짝 기울어지는 어깨, 말을 고를 때 입술을 깨무는 습관까지. 필름 위에 새겨진 그녀의 모든 순간이 내게는 보물이었다.
"이번엔 진짜 현실을 찍자. 각본 없이, 필터 없이." 지영이의 마지막 제안이었다. 우리 관계의 진짜 모습을 담자는 그녀의 아이디어에 나는 망설였다. 카메라가 켜진 순간마다 우리는 어느새 연기를 하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 도전이 두려웠음을 이제야 인정한다.
그녀의 장례식이 끝난 후, 나는 편집하던 영상을 다시 열었다. 스크린 속 그녀는 여전히 살아 숨쉬고 있었다. 웃고, 울고, 화내고. 그 모든 감정이 생생했다. 그러나 편집을 계속할수록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카메라 앞에서의 지영은 너무 완벽했다. 웃음의 타이밍, 눈물의 간격, 분노의 강도까지. 마치 모든 것이 계산된 것처럼.
촬영 날짜별로 영상을 정리하던 중, 파일명에 오류가 있음을 발견했다. '현실_take1', '현실_take2', '현실_take12'... 그리고 그녀의 노트북에서 발견한 대본. 그 안에는 우리의 모든 순간이 정교하게 짜여 있었다. 첫 키스부터 마지막 다툼까지. 심지어 그녀의 사고까지.
"완벽한 엔딩을 위해서는 비극이 필요해. 관객을 울리려면." 대본 마지막 페이지에 적힌 그녀의 메모였다.
경찰은 그것을 단순 사고로 결론지었다. 하지만 나는 알았다. 그녀가 선택한 엔딩이었다는 것을. 우리의 영화를 위해, 아니 그녀의 영화를 위해.
오늘, 나는 그녀의 대본대로 마지막 장면을 편집했다. 스크린에 떠오른 그녀의 얼굴, 그리고 천천히 페이드 아웃. 자막이 올라간다: "감독: 지영, 주연: 나" 마치 내 인생이 그녀가 연출한 한 편의 영화였던 것처럼. 그리고 어쩌면, 정말로 그랬는지도 모른다.
스크린이 검게 변하고, 내 손가락이 '업로드' 버튼 위에서 맴돈다. 이 영화가 공개되는 순간, 그녀의 마지막 시나리오는 완성된다. 그리고 나는 여전히 그녀의 각본 속에 살고 있는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