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 날씨: 그가 내게 남긴 마지막 장면
비가 내렸다. 그것도 아주 거세게. 유리창을 두드리는 빗방울 소리가 영화관 안을 가득 채웠다. 이상했다. 실내 영화관에서 어떻게 빗소리가 들릴 수 있지? 하지만 나는 그 소리에 집중했다. 스크린은 검은색으로 변해 있었고, 관객은 나 혼자뿐이었다.
"이게 마음에 드시나요, 선생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른쪽을 보니 낡은 영사기 옆에 서 있는 노인이 보였다. 그의 실루엣만 보일 뿐 얼굴은 어둠에 가려 있었다. "당신이 요청한 날씨입니다. 비. 당신 인생의 영화에 딱 맞는 배경이죠."
갑자기 스크린에 영상이 비춰졌다. 나였다. 10년 전 그녀와 함께 있는 나. 우리는 벚꽃이 흩날리는 공원 벤치에 앉아 있었다. 화창한 봄날이었다. 그녀의 웃음소리가 영화관 안을 가득 채웠다. 너무 선명해서 그녀가 지금 내 옆에 있는 것 같았다.
"잠깐만요." 내가 말했다. "이건... 어떻게..."
"당신의 기억입니다." 노인이 대답했다. "영화는 언제나 우리가 잊은 날씨를 기억합니다. 계속할까요?"
스크린이 전환되었다. 이번엔 그녀의 병실이었다. 창밖으로는 진눈깨비가 내리고 있었다. 나는 그녀의 손을 잡고 있었고, 그녀는 점점 약해져 갔다. 의사들은 더 이상 희망이 없다고 했다. 나는 그날의 날씨가 얼마나 추웠는지 기억했다. 손가락이 얼어붙는 듯했다.
"그만요." 내가 외쳤다. "이걸 보여주는 이유가 뭐죠?"
노인은 웃었다. "당신이 신청한 거예요. '잊고 싶은 날들의 영화'라고요. 티켓을 기억하세요?"
주머니에서 티켓을 꺼냈다. '당신의 기억, 당신이 선택한 날씨와 함께'라고 쓰여 있었다. 내가 언제 이런 걸 샀지?
스크린이 다시 바뀌었다. 그녀의 장례식 날이었다. 놀랍게도 화창했다. 모두가 검은 옷을 입고 있었지만,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파랗게 펼쳐져 있었다. 웃기지도 않는 아이러니였다.
"이제 마지막 장면입니다." 노인이 말했다.
스크린에 오늘 아침의 내가 나타났다. 아파트 창문을 통해 밖을 내다보며 기상 예보를 확인하는 모습. 그리고 티켓 한 장을 손에 쥐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스크린 속 창밖은 맑았다. 하지만 내가 실제로 본 오늘 아침은 비가 내렸다.
"날씨는 당신의 마음입니다." 노인이 영사기를 멈추며 말했다. "당신은 지난 3년간 매일 비가 내린다고 생각해왔어요. 하지만 실제로는..."
갑자기 영화관의 천장이 열렸다. 위를 올려다보니 맑고 푸른 하늘이 보였다. 비는 멈췄고, 아니, 애초에 비가 내리지 않았다. 노인은 사라졌고, 내 손에는 그녀가 남긴 마지막 편지가 들려 있었다. "날씨가 좋은 날, 우리의 영화를 다시 보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