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같은 소개팅, 소개팅같은 영화
"당신이 이 자리에 오실 거란 걸 제가 이미 예견했어요." 난 이 대사를 '영화심리학 입문' 교재에서 읽었던 기억이 났다. 소개팅 상대가 그 말을 내뱉는 순간, 식당의 모든 소리가 한순간 멈춘 것만 같았다. 그는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우리가 만날 확률은 5,243분의 1이었죠. 영화 속에서나 가능한 일이지만, 여기 이렇게 앉아있네요."
그는 영화 평론가였다. 나는 심리학과 대학원생. 우리의 공통점은 영화를 통해 인간의 마음을 읽는다는 것뿐이었다. 창밖으로 비가 내리기 시작했고, 레스토랑의 조명은 더욱 따뜻해졌다. 와인 잔에 반사된 빛이 그의 얼굴에 춤을 추었다. 마치 '미드나잇 인 파리'의 한 장면 같았다.
"당신이 좋아하는 영화는 무엇인가요?" 그가 물었다.
"트루먼 쇼요.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모두 각본에 따라 움직이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요." 내 대답에 그는 미소를 지었다.
"흥미롭군요. 사실 제가 이 소개팅에 참석한 이유도 그와 비슷해요. 인생이 영화처럼 각본대로 흘러간다면, 오늘 우리의 만남도 누군가 미리 계획한 것일 수 있겠죠."
대화는 놀랍도록 자연스럽게 흘러갔다. 영화 속 장면들을 인용하며 우리는 서로의 생각을 교환했다. 메뉴판을 보지 않고도 서로가 좋아할 음식을 추천했고, 그것이 맞아떨어졌을 때의 놀라움. 마치 오래 알고 지낸 사람들처럼, 우리는 영화 속 인물들의 심리를 분석하고 웃었다.
시간이 흐르고, 그가 화장실에 간 사이 내 휴대폰이 울렸다. 친구였다.
"어때? 소개팅 잘 돼가?"
"응, 너무 좋아. 마치 영화처럼 완벽해."
"뭐? 무슨 소리야? 소개팅 상대 아직 안 왔다고 방금 연락 왔는데?"
그 순간 내 등 뒤로 한기가 느껴졌다. 화장실에서 돌아온 그를 바라보았다. 그는 여전히 미소를 짓고 있었지만, 그 미소가 이제는 낯설게 느껴졌다.
"알고 있었어요." 그가 말했다. "당신이 잘못된 사람과 앉아있다는 것을요. 하지만 너무 재미있어서... 이 영화 같은 상황을 계속하고 싶었어요."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았다. 긴장감이 흐르는 침묵 속에서, 나는 이상하게도 안도감을 느꼈다. 계획된 소개팅이 아닌, 우연히 쓰여진 시나리오. 각본 없는 만남이 더 진실되게 느껴졌다.
"혹시," 내가 용기를 내어 물었다. "이 영화의 다음 장면은 어떻게 될까요?"
그는 창밖의 비를 바라보며 웃었다. "그건 감독인 당신에게 달려 있겠죠. 우리가 만든 이 영화의 엔딩은... 열려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