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회사의 그림자
최신 영화의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까지 극장을 떠나지 않는 사람은 딱 두 종류뿐이다. 영화에 미친 매니아와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 나는 후자였다. 적어도 어제까지는.
"김대리, 이 씬 편집 좀 다시 해봐요. 감독님이 원하는 건 이런 느낌이 아니었어." 프로듀서의 목소리가 어깨를 짓눌렀다. 새벽 네 시, 스타일러스 펜이 타블렛 위에서 미끄러지는 소리만 가득한 편집실. 모니터 불빛이 내 얼굴을 파랗게 물들였고, 커피 찌꺼기 냄새가 공기 중에 묻어났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열두 번째 수정이었다.
드림라인 픽처스. 한국 최고의 영화 제작 회사라는 타이틀은 이런 밤들로 만들어졌다. 화려한 레드카펫과 수상 소감 뒤에 가려진, 편집실에서의 밤샘과 끝없는 수정 작업들. 나는 이 회사에 입사한 지 3년째였고, 여전히 '커리어의 발판'이라는 말로 스스로를 위로하고 있었다.
"대표님이 이번 영화에 직접 관여하신대. 잘해봐, 김대리." 프로듀서가 던진 말은 무거운 돌덩이처럼 내 가슴에 떨어졌다. 장진우 대표. 업계에서 '황금손'이라 불리는 인물. 그가 만지는 영화는 모두 흥행했고, 그 비결은 아무도 몰랐다.
그날 밤, 나는 실수로 회사 서버의 보안 폴더에 접속했다. '프로젝트 X'라는 이름의 폴더. 호기심은 나를 죄인으로 만들었다. 그 안에는 우리 회사가 제작한 모든 흥행작의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었다. 관객 심리 분석, 경쟁작 약점 조사, 그리고... 산업 스파이 보고서들.
떨리는 손으로 문서들을 넘기던 중, 내가 현재 편집 중인 영화의 파일을 발견했다. 경쟁사의 개봉 일정 변경을 위한 '작전'과 심의위원회 로비 내용이 상세히 적혀 있었다. 성공의 그림자에는 언제나 어둠이 함께했던 것이다.
다음 날, 장진우 대표가 직접 편집실을 찾았다. "김대리, 어제 서버에 접속한 기록이 있던데." 그의 눈빛은 차가웠고, 나는 얼어붙었다. "우리 회사의 비전에 동참할 의향이 있나? 아니면..."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영화가 현실을 반영한다고들 하지만, 때로는 현실이 영화보다 더 극적이라는 것을. 내 앞에는 두 가지 선택지가 있었다. 드림라인 픽처스의 일원으로 남아 '성공'이라는 환상을 쫓을 것인가, 아니면 진실을 들고 밖으로 나갈 것인가.
나는 스타일러스 펜을 내려놓았다. 이제 내가 만들고 싶은 건 다른 사람의 영화가 아니었다. 내 이야기, 내 진실을 담은 나만의 영화였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내가 그 크레딧의 주인공이 될 차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