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컬트 판타지: 그림자 너머의 세계
나는 어제 죽었다. 그런데 지금 내 시체를 내려다보고 있다.
시체는 내 원룸 침대 위에 반듯하게 누워있다. 얼굴은 평화롭고, 마치 깊은 잠에 빠진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벽에 붙은 달력은 어제 날짜에 붉은 동그라미가 쳐져 있고, 그 옆에는 내 글씨체로 '마지막 날'이라고 적혀 있다.
"적응하는 데 시간이 좀 걸리죠."
갑작스런 목소리에 나는 화들짝 놀랐다. 방 구석에 한 남자가 서 있었다. 검은 양복을 입은 그는 내 방에 있을 법하지 않은 사람이었다. 그의 존재감은 묘하게 희미했다가 진해졌다가를 반복했다.
"당신은... 사신인가요?" 내 목소리가 공기 중에 떠다니는 것 같았다.
남자는 웃음을 터뜨렸다. "오, 아니오. 그건 너무 클리셰죠. 저는 '경계선 안내인'이라고 해요. 당신같은 새로운 영혼들을 다음 단계로 안내하는 일을 하죠."
그가 손짓하자, 내 방의 벽이 물처럼 일렁이더니 투명해졌다. 벽 너머로 보이는 세계는 내가 알던 도시의 모습과 비슷했지만, 건물들은 기하학적으로 불가능한 각도로 서 있었고, 하늘에는 세 개의 달이 떠 있었다.
"환영합니다, 판타지 차원으로." 안내인이 말했다. "이곳은 당신이 생전에 그토록 믿고 싶어했던 오컬트 세계의 한 부분이에요."
나는 어안이 벙벙했다. 대학 시절부터 오컬트 문화와 초자연적 현상을 연구해왔지만, 그것이 실제라고는 진심으로 믿지 않았다. 그저 현실 도피의 수단이었을 뿐.
"내가 왜 여기 있는 거죠?" 내가 물었다.
"사람들은 자신이 진정으로 믿는 곳으로 가게 되어 있어요." 안내인이 말했다. "당신은 표면적으로는 회의적이었지만, 깊은 내면에서는 이 세계를 갈망했어요. 간절히 원하는 것이 현실이 되는 법이죠."
안내인은 주머니에서 작은 책을 꺼냈다. 그 표지에는 내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이건 당신의 '사후 계약서'예요. 당신이 살아있을 때 쓴 소설 초안이죠. 기억나나요? '죽은 후에 가고 싶은 세계'에 대한 글이었어요."
기억이 물밀듯이 밀려왔다. 밤새 술에 취해 쓴 단편소설. 내가 창조한 판타지 세계에 대한 묘사. 내가 설계한 초자연적 법칙들. 그리고 마지막 문장: '이 세계가 실재한다면, 나는 기꺼이 그곳으로 갈 것이다.'
안내인은 책을 다시 주머니에 넣고 미소지었다. "준비됐나요? 당신이 만든 세계가 당신을 기다리고 있어요."
벽이 완전히 사라지고, 그 너머의 세계가 나를 향해 손짓했다. 나는 망설였다. 이곳이 천국인지 지옥인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이것은 내가 항상 꿈꿔왔던 모험의 시작이었다.
발을 내딛으며, 나는 문득 깨달았다. 죽음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이야기의 시작점이었다. 그리고 이 이야기의 작가는 다름 아닌 나 자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