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타지의 어둠: 공포를 거부한 자의 최후
매일 밤 수천 개의 책이 속삭인다, 그중에서도 가장 오래된 그 책만은 절대 열지 말라고. 도서관 지하실 맨 끝 선반, 쇠사슬로 묶인 가죽 표지의 책은 윌리엄이 야간 경비를 시작한 첫날부터 그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쇠사슬은 녹슬어 있었고, 자물쇠는 이미 부서져 있었다.
"현실은 지루해. 내게 필요한 건 진짜 판타지야." 윌리엄은 결국 그 책을 펼쳤다. 종이를 넘기는 소리가 마치 누군가의 숨소리처럼 들렸다. 페이지마다 잉크가 아닌 다른 무언가로 쓰인 듯한 글자들이 희미하게 빛났다. 그가 단어들을 읽어 내려갈수록 도서관의 공기는 더욱 차가워졌고, 책장 사이로 스며드는 그림자들이 점점 길어졌다.
"세상에는 두 가지 현실이 있다. 네가 믿는 것과 진짜 존재하는 것." 책의 한 구절이 그의 머릿속에서 메아리쳤다. 윌리엄의 눈앞에서 페이지가 갑자기 물처럼 일렁였다. 잉크로 그려진 숲이 입체적으로 솟아올랐고, 그 사이로 날카로운 이빨을 가진 생명체들이 꿈틀거렸다.
"이건... 완벽해." 윌리엄은 황홀감에 취해 속삭였다. 책의 세계가 점점 현실로 번져나왔다. 서가 사이로 이상한 덩굴들이 자라나고, 창문 너머로 보이는 도시의 불빛들이 하나둘 사라졌다. 그는 공포가 아닌 경이로움을 느꼈다. 마침내 진짜 판타지를 발견한 것이다.
며칠 후, 도서관 직원들은 지하실에서 윌리엄을 발견했다. 그는 쇠사슬에 묶인 책을 무릎에 올려놓고 앉아 있었지만, 그의 눈동자는 비어 있었고 피부는 마치 오래된 양피지처럼 변해 있었다. 그의 몸 전체에는 알 수 없는 상형문자들이 새겨져 있었다.
경찰은 사건을 조사하며 윌리엄의 일기장을 발견했다. 마지막 페이지에는 떨리는 글씨체로 이렇게 적혀 있었다: "판타지는 현실의 틈새에서 자라는 꽃이 아니라, 현실을 먹어치우는 괴물이었다. 모든 이야기에는 공포가 숨어있다. 그것은 이야기가 살아있다는 증거다. 이제 나는 그들의 이야기가 되었다."
도서관은 폐쇄되었고, 그 책은 특수 보관함에 봉인되었다. 하지만 가끔, 밤이 깊어질 때면 보관함 안에서 페이지가 넘어가는 소리가 들린다고 한다. 그리고 그날 밤 당직이었던 경비원의 책상에는 항상 새로운 일기장이 놓여있다. 첫 페이지에는 항상 같은 문장이 적혀 있다: "내게 필요한 건 진짜 판타지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