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길에 만난 포켓몬: 어른의 판타지
매일 같은 시간, 같은 역에서 같은 얼굴들과 마주치는 출근길이었다. 그날 아침, 나는 플랫폼에서 이상한 노란 생명체를 발견했다. 처음엔 피카츄 인형인 줄 알았다. 사람들은 그저 스마트폰만 내려다보며 무심코 지나쳤다. 하지만 그것은 분명 움직였다.
"피카... 피카?"
귀를 의심했다. 노란 생명체는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바라보았다. 출근 시간에 환각을 보고 있나 싶었다. 지하철이 들어오자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그 사이에서 노란 생명체가 내 가방으로 뛰어들었다. 가방 안에서 뭔가 꿈틀거리는 느낌이 들었지만, 꽉 찬 전철 안에서 확인할 수 없었다.
회사에 도착해 화장실로 직행했다. 가방을 열자 노란 꼬리가 삐죽 나왔다. 진짜 피카츄였다. 가슴이 쿵쾅거렸다. 어린 시절 포켓몬 카드를 모으던 나의 꿈이 현실이 된 순간이었다.
"너... 진짜니?"
손가락으로 살짝 찔러보니 부드러운 털이 만져졌다. 피카츄는 내 손가락을 핥았다. 전기가 살짝 통하는 느낌이었다.
"김 대리, 회의 시작합니다!"
팀장의 목소리에 화들짝 놀라 피카츄를 가방에 다시 넣고 회의실로 향했다. 회의 내내 가방에서 들려오는 작은 소리에 식은땀이 흘렀다. 프로젝트 발표 중 갑자기 "피카츄!"하는 소리가 들리면 어쩌나 싶었다.
점심시간, 회사 옥상으로 피카츄를 데리고 갔다. 햇빛 아래에서 피카츄의 노란 몸이 반짝였다. 내 도시락의 김밥을 맛있게 먹는 모습이 너무 귀여웠다. 순간 어린 시절의 기억이 물밀듯이 밀려왔다. 포켓몬 마스터가 되는 꿈, 친구들과 카드를 바꿔 모으던 순간들, 그리고 어른이 되면서 잊고 지냈던 순수한 꿈과 상상력.
"야, 대리님. 혼자 뭐해요?"
동료의 목소리에 깜짝 놀라 뒤를 돌아봤다. 피카츄는 사라지고 내 손에는 노란색 회사 메모지만 남아있었다. 그제서야 깨달았다. 출근길의 피카츄는 존재하지 않았다. 압박감, 마감일, 끝없는 회의로 지친 내 마음이 만들어낸 환상이었다.
그날 저녁, 퇴근길에 게임샵에 들러 오래된 포켓몬 게임을 샀다. 집에 돌아와 게임기를 켰다. 화면 속 피카츄가 반갑게 인사했다. 어른이 되어 잊고 있던 상상력과 꿈을 되찾은 기분이었다. 다음날 아침, 출근길에 나는 스마트폰을 보는 대신 주변을 유심히 살폈다. 혹시 다른 포켓몬들도 숨어있을지 모르니까. 어쩌면 우리가 찾지 않아서 보지 못하는 것일 뿐, 판타지는 언제나 일상 속에 숨어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