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타지의 대가: 초콜렛으로 쓰는 운명
초콜릿이 금보다 비싼 세상에서, 마법사들은 그것을 마법의 원천으로 삼았다. 아흐렘의 손가락이 떨리기 시작한 건 진한 초콜릿 향이 코끝을 스치는 순간이었다.
"여기, 마지막 남은 한 조각입니다."
창고 깊숙한 곳에서 수습생 엘리가 낡은 금고를 열었다. 그 안에는 손바닥 크기의 검은 초콜릿 한 조각이 은빛 천에 싸여 있었다. 아흐렘의 눈이 번쩍였다. 이 작은 조각 하나로 그는 죽어가는 마법사 길드를 살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
"세상에서 가장 순수한 카카오, 그리고..."
엘리의 목소리가 떨렸다. "...죽음을 맛본 자의 기억이 담겨 있습니다."
아흐렘의 손이 초콜릿을 집어 들었다. 표면은 거울처럼 매끄러워 자신의 주름진 얼굴이 비쳤다. 그의 옆구리가 욱신거렸다. 왕국의 기사들에게 받은 상처는 매일 그를 죽음 쪽으로 한 걸음씩 밀어내고 있었다.
"그러니까, 이것을 먹으면..." 아흐렘이 중얼거렸다.
"죽음의 문턱에서 돌아온 자의 기억과 힘을 얻게 됩니다. 하지만 마스터님, 그 기억들은..." 엘리가 말을 삼켰다. "그 기억들은 당신을 미치게 할 수도 있습니다."
방 안은 초콜릿 냄새로 가득했다. 달콤하면서도 쓴맛이 느껴지는, 죽음과도 같은 달콤한 유혹의, 오래된 향.
아흐렘은 초콜릿을 입에 가져갔다. 그 순간, 온 방안이 진동했다. 창문 너머로 왕국 기사들의 횃불이 보였다. 그들이 왔다.
"마스터님, 빨리요!" 엘리가 소리쳤다.
아흐렘은 반짝이는 초콜릿 조각을 바라보며 잠시 망설였다. 그리고 한 입 베어 물었다.
초콜릿이 혀에 닿는 순간, 천 개의 삶이 그를 관통했다. 전쟁터에서 죽어가는 병사, 사랑하는 이를 잃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연인, 폭풍우 속에서 익사한 선원, 불길에 휩싸인 아이... 그들 모두의 마지막 순간이 아흐렘의 의식을 뒤덮었다. 고통, 두려움, 후회, 그리고 가끔은 평화.
그의 눈에서 검은 눈물이 흘러내렸다. 카카오처럼 진한 눈물이.
"기사들이 문을 부수고 있어요!" 엘리의 외침이 먼 곳에서 들려왔다.
아흐렘은 일어섰다. 그의 주위로 어둠이 소용돌이쳤다. 마법이 돌아온 것이다. 천 명의 죽음을 경험한 그는 이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엘리, 네게 비밀을 하나 알려주마." 아흐렘이 미소지었다. "그 초콜릿은 내가 만든 것이란다. 내 기억... 내 전생의 기억들로."
문이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방안으로 빛이 쏟아져 들어왔고, 아흐렘은 그 빛을 향해 걸어갔다. 그의 입가에는 여전히 초콜릿의 달콤쌉싸름한 흔적이 남아있었고, 그것은 마치 오래된 판타지 이야기처럼, 현실과 상상 사이의 경계에 자리한 미소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