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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사랑

패션과 사랑: 색채의 고백

그녀가 그의 색깔을 입기 시작한 건 그가 떠난 다음 날부터였다. 오늘은 남색 셔츠, 어제는 회색 스웨터, 그제는 빨간 넥타이가 달린 흰 블라우스. 정확히 1년 전 그가 마지막으로 입었던 옷들을 하나하나 재현해 나갔다.

미나는 옷장 앞에 서서 오늘의 '그'를 꺼냈다. 올리브 그린 니트. 살짝 보풀이 일었던 왼쪽 소매까지 완벽하게 똑같은 옷을 찾는 데 세 달이 걸렸다. 손끝으로 니트의 질감을 느끼자 그날의 기억이 손끝을 타고 올라왔다. 차가운 가을비가 내리던 날, 그의 손이 그녀의 어깨를 감싸안던 순간의 온기.

"패션은 말이야, 미나야. 우리가 말하지 못하는 것을 대신 이야기해주는 언어야."

그는 패션 디자이너였고, 그녀는 그저 의류 매장의 직원이었다. 매일 아침 옷을 고르는 일이 특별한 메시지를 담는 의식이라고 생각해본 적 없는 그녀에게, 그는 색깔과 질감, 실루엣의 언어를 가르쳐주었다. 그리고 어느새 그녀는 그의 옷차림으로 그의 기분을 읽을 수 있게 되었다.

검은색 터틀넥은 그가 침묵하고 싶은 날이었고, 노란색 셔츠는 그녀에게 무언가 말하고 싶은 날이었다. 마지막 날, 그는 올리브 그린 니트를 입고 왔다. 그녀는 그때 그 의미를 읽지 못했다.

거울 앞에 선 미나는 올리브 그린 니트가 자신의 피부에 반사되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365일 동안 그의 옷을 따라 입으며 그녀는 마침내 깨달았다. 옷은 단지 천 조각이 아니라 감정의 지도였다는 것을. 그래서 오늘, 그의 모든 옷을 입어본 날, 그녀는 마지막 메시지를 해독했다.

올리브 그린. 평화와 희망의 색. 작별의 색.

미나는 천천히 니트를 벗었다. 그리고 1년 만에 처음으로 자신의 색깔을 선택했다. 밝은 산호색 원피스. 그녀가 한 번도 입지 않았던, 그러나 항상 입고 싶어했던 색.

문자가 왔다. "1년 만이네요. 잘 지냈나요?"

미나는 웃으며 메시지를 보냈다. "네, 당신이 가르쳐준 언어로 살고 있어요. 오늘은 산호색을 입었어요."

그가 즉시 답했다. "새로운 시작의 색이군요."

사랑이 끝나고 패션이 시작되었을까, 아니면 패션이 끝나고 진짜 사랑이 시작되었을까. 미나는 거울 속 산호색 실루엣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어쩌면 둘 다 진행형이고, 그녀는 이제 자신만의 색채 언어를 써내려가기 시작한 것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