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초콜렛: 입을 수 있는 달콤함
칙칙한 회색 런웨이가 끝없이 이어지는 꿈을 꾸었다. 열아홉 번째 생일, 나는 세계적인 패션 쇼의 피날레를 장식할 모델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모든 옷이 사라져버렸고, 나는 벌거벗은 채로 걸어야 했다. 그때 달콤한 향기가 코끝을 간질였다.
눈을 떴을 때, 작업실은 초콜릿 향으로 가득했다. 창가에 놓인 빈티지 다이얼 전화기가 울렸다.
"내일까지 완성 가능한가요? 파리 컬렉션 오프닝 피스로 당신의 작품을 원해요."
파리의 유명 디자이너 마르셀 뒤부아의 목소리였다. 내 작은 초콜릿 공방에서 시작한 실험적 작업이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이다. 벨기에 초콜릿으로 만든 섬세한 레이스 패턴, 카카오 버터와 특수 폴리머를 혼합해 만든 유연한 원단. 나는 먹을 수 있는 패션을 만들어냈다.
작업대 위에는 반쯤 완성된 드레스가 있었다. 70% 다크 초콜릿으로 짠 코르셋에서는 아직 카카오의 쌉싸름한 향이 올라왔다. 표면의 장미 무늬는 루비 초콜릿으로 정교하게 완성했다. 치마는 화이트 초콜릿의 얇은 레이어를 겹겹이 쌓아 바람에 흩날리는 듯한 효과를 냈다.
"불가능해요. 이건 예술이에요, 공장에서 찍어내는 제품이 아니라."
전화를 끊고 창밖을 바라보았다.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마감까지 18시간. 초콜릿은 섭씨 20도가 넘으면 녹기 시작한다. 하지만 나는 이미 해결책을 알고 있었다.
밤새 작업했다. 내 손끝에서 초콜릿은 단순한 디저트를 넘어 생명을 얻었다. 마지막 코팅제를 바르자 드레스는 은은한 광택을 띠며 완성되었다. 체온에 닿아도 녹지 않고, 빛을 받으면 무지개처럼 빛나는 초콜릿 드레스.
파리행 비행기에 오르며 조심스레 드레스를 특수 제작한 케이스에 넣었다. 쇼가 끝나면 모델과 관객들은 드레스의 일부를 떼어 맛볼 수 있을 것이다. 내 작품은 입는 순간부터 사라지기 시작하는 찰나의 예술이 될 것이다.
패션쇼 직전, 백스테이지는 혼돈 그 자체였다. 메인 모델이 갑작스러운 알레르기 반응으로 쓰러진 것이다. 마르셀이 내게 다가왔다.
"당신이 입어야 해요. 이 드레스를 이해하는 건 당신뿐이니까."
런웨이에 오르자 플래시가 터졌다. 내 몸을 감싼 초콜릿 드레스는 조명 아래서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빛났다. 모든 시선이 나를 향했다. 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드레스에서 은은한 초콜릿 향이 퍼졌고, 관객들은 무언가를 감지한 듯 코를 벌름거렸다.
그날 밤, 패션과 음식의 경계를 허문 내 작품은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아무도 모른다. 드레스의 가장 중요한 비밀 성분은, 열아홉 번째 생일에 꾸었던 악몽의 달콤한 변주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