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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켓몬사랑

포켓몬 사랑의 기억 상자

할아버지가 돌아가시던 날, 유품 정리를 하다 발견한 낡은 포켓몬 게임 카트리지는 마치 타임캡슐처럼 내 어린 시절을 불러냈다. 피카츄가 그려진 회색 플라스틱 케이스에는 '민호에게'라는 메모가 붙어 있었다. 내 이름이 아니었다.

아내는 내가 그것을 쓰레기통에 버리지 않고 침대 밑에 숨겨둔 것을 알지 못했다. 나는 밤마다 오래된 게임보이를 꺼내 그 카트리지를 넣고 전원을 켰다. 화면이 깜박이며 나타난 것은 레벨 100의 포켓몬들로 가득 찬 저장 데이터. 주인공 이름은 '준영'이었다. 민호에게 선물했지만 결국 할아버지 손에 돌아온 게임이었다.

"당신 요즘 밤에 뭐하는 거에요?" 아내가 물었을 때, 나는 "일 좀 마무리하고 있어"라고 대답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 낯선 소년의 포켓몬 여정을 따라가고 있었다. 할아버지의 손자라면 내 사촌일 텐데, 기억에 없었다.

일주일 째 되던 날, 포켓몬 리그 챔피언을 격파한 후 나타난 스태프 롤 화면에서 게임이 멈추지 않았다. 대신 텍스트 창이 열렸다. "준영아, 아빠가 많이 미안하구나. 네가 이 메시지를 읽을 때쯤이면 나는 이미 세상을 떠났을 거야. 하지만 너의 포켓몬들처럼, 아빠의 사랑은 여기 계속 남아있을 거란다."

숨이 막혔다. 게임 화면은 계속됐다. "네가 이 게임을 사촌 민호에게 빌려줬을 때, 나는 네가 얼마나 다른 사람을 배려할 줄 아는지 자랑스러웠단다. 이제 아빠는 갈 때가 됐어. 하지만 걱정 마. 우리 언젠가 또 만날 거야. 그때까지 건강하게 자라거라."

손이 떨렸다. 할아버지는 내게 한 번도 '준영'이라는 이름의 아들이 있었다고 말씀하신 적이 없었다. 가계부를 뒤졌고, 오래된 앨범을 찾아보았다. 그리고 마침내 찾아냈다. 바래진 흑백사진 속, 어린 소년이 포켓몬 모자를 쓰고 환하게 웃고 있었다. 뒷면에는 '준영, 7살, 마지막 생일'이라고 적혀 있었다.

아내에게 전화했다. "여보, 내 신분증 좀 볼래?" 그녀가 읽어주는 주민등록번호, 그리고 이름. 김준영. 내 이름이었다. 하지만 내 기억 속에서는 언제나 '준호'였다. 아버지의 메시지를 담은 게임은 내게 돌아온 것이었다.

떨리는 손으로 게임보이 전원 버튼을 다시 눌렀다. 그런데 이번에는 저장 데이터가 사라져 있었다. 새 게임만이 가능했다. 포켓몬들과 함께했던 그 여정, 마지막 메시지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괜찮았다. 그것은 이미 내 가슴에 저장되어 있었으니까.

오늘도 나는 아들과 함께 포켓몬 게임을 한다. 그리고 생각한다. 사랑은 가끔 디지털 세계의 데이터처럼 보이지 않는 곳에 남아, 우리가 가장 필요로 할 때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우리에게 돌아온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