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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패션: 누가 나를 입는가

화면에 뜨는 캐릭터는 누구일까? 내가 골랐지만, 내가 아니다. 멋진 가죽 자켓과 찢어진 청바지를 입은 그녀는 내 분신이자 타인이다. 나는 그저 그녀를 움직이는 손가락일 뿐.

마우스를 클릭할 때마다 옷장이 펼쳐진다. 무제한 아이템, 무한한 조합. 내 현실 옷장은 베이지색 후드티와 검은 면바지로 가득 찬 단조로움 그 자체인데. 게임 속 '나'는 파스텔 핑크 드레스부터 사이버펑크 갑옷까지 소화한다. 실제 내가 평생 입어보지 못할 옷들을 가상의 내가 하루에도 수십 번 갈아입는다.

"이 의상으로 퀘스트 깨면 레어 아이템 주는 거 알지?" 게임 채팅창에서 누군가 속삭인다. 나도 안다. 그 '레어 아이템'이라는 건 그저 몇 줄의 코드에 불과하지만, 그것을 얻기 위해 실제 돈을 지불한다. 디지털 세계의 패브릭에 실제 화폐가 흐르는 아이러니.

어제는 실물 옷을 살 때보다 게임 속 아바타의 의상을 고르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썼다. 내 얼굴도 아닌 픽셀 얼굴에 어울리는 모자를 고르며 한 시간을 보냈다. 현실에서는 거울을 마주할 때마다 시선을 돌리면서.

엄마는 말했다. "그 가짜 옷에 돈 쓰지 말고 실제 옷 좀 사라." 하지만 엄마는 모른다. 게임 속에서 내가 입는 건 단순한 '가짜 옷'이 아니라, 내가 되고 싶은 모든 사람들의 껍데기라는 것을.

오늘, 게임 서버가 다운됐다. 처음에는 불안했다. 내 캐릭터, 내 의상, 내 디지털 자아가 모두 증발한 것 같은 공허함. 그런데 이상하게 자유롭기도 했다. 문득 옷장을 열었다. 베이지색 후드티와 검은 면바지 사이에 숨겨두었던 선명한 붉은색 원피스가 보였다. 한 번도 입지 않은 채 태그가 달린 그대로였다.

손이 떨렸다. 그것은 게임 속 내가 가장 많이 입던 아이템과 똑같은 색이었다. 잠시 고민하다 옷을 꺼내 입었다. 거울 앞에 섰을 때, 나는 처음으로 현실과 가상의 경계가 흐려지는 것을 느꼈다.

"누가 누구를 입는 걸까?" 거울 속 나에게 물었다. 그동안 내가 아바타를 꾸민 것인지, 아바타가 나를 디자인한 것인지. 그 붉은 원피스는 게임 속 패션이 현실의 나를 바꾸어 놓은 증거였다.

서버는 다음 날 복구됐다. 하지만 이번엔 로그인하기 전, 내 실제 옷장 앞에 오래 머물렀다. 게임을 켰을 때, 처음으로 내 아바타를 투명하게 바라볼 수 있었다. 픽셀로 이루어진 그녀는 더 이상 내가 되고 싶은 사람이 아니었다. 그저 내가 조종하는 인형에 불과했다.

마우스를 클릭해 옷장 아이콘을 눌렀다. 무한한 옵션들 사이에서, 나는 베이지색 후드티와 검은 면바지를 찾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