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고민: 서로 다른 출발선
에어컨이 고장 난 그날, 내 인생도 함께 멈춰버렸다. 윤우는 땀에 젖은 셔츠를 들어 올려 이마의 땀을 닦았다. 창문 너머로 들어오는 매미소리가 귓가를 파고드는 동안, 손에 쥔 대학 합격 통지서는 이미 땀에 얼룩져 있었다.
"축하해, 네가 정말 자랑스럽다." 아버지의 목소리에는 감정이 묻어났지만, 윤우는 그 진심을 의심했다. 장학금을 받았음에도 남은 등록금은 가족에게 큰 부담이었다. 에어컨을 고치지 못하는 집에서, 대학 등록금은 사치에 가까웠다.
그날 밤, 옥상에서 맥주를 마시며 윤우는 친구 민석과 마주 앉았다. 아래로는 도시가 불빛으로 반짝였고, 두 사람의 얼굴은 여름 열기로 붉게 물들어 있었다.
"난 안 갈 거야," 윤우가 맥주캔을 짓눌렀다. "대학보다 당장 일하는 게 나을 것 같아."
민석은 아무 말 없이 바라만 보다가 한참 만에 입을 열었다. "너 지금 미쳤어? 네가 얼마나 노력했는데."
"네가 뭘 알아?" 윤우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너희 집은 에어컨 세 대나 돌리면서 사는데!"
민석의 얼굴이 굳어졌다. 둘 사이에 흐르는 여름 공기가 더욱 무거워졌다.
"내가... 등록금 도와줄게." 민석의 말에 윤우는 웃음을 터뜨렸다.
"그래, 네 용돈으로? 착하다, 민석아." 비웃음이 묻어났다.
민석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내 아버지가 네 아버지 다니는 회사 사장이야."
윤우의 웃음이 멈췄다. 시간이 정지한 듯했다.
"무... 무슨 소리야?"
"알고는 있었어. 근데 말하기 어려웠어." 민석이 고개를 숙였다. "너랑 친구 되고 싶어서 비밀로 했어."
윤우는 벌떡 일어났다. 귓가에서 매미소리가 더욱 크게 들렸다. 그동안의 우정이 새롭게 해석되었다. 동정? 죄책감? 호기심?
"신경 쓰지 마. 난 충분히 강해." 윤우는 억지로 웃으며 말했다.
민석은 여전히 고개를 들지 못했다. "난 정말 네 친구야. 돈 같은 건..."
"이제 와서 뭐가 달라지겠어?" 윤우가 자리를 떠나려 했다.
"내 돈 아니야." 민석이 불쑥 말했다. "장학금이야. 네 이름으로. 아버지가... 회사 장학 프로그램에..."
밤하늘에 별이 반짝였다. 윤우는 기쁨도, 화도 나지 않았다. 그저 복잡했다. 자존심과 현실 사이, 고마움과 배신감 사이에서 그는 여름밤의 매미소리만 들었다.
"고마워, 정말로." 윤우가 마침내 말했다. "근데 네 진짜 이름이라도 알려줄래?"
민석이 고개를 들었을 때, 그의 눈에는 눈물이 맺혀 있었다. 두 청년은 같은 하늘 아래, 서로 다른 출발선에 서 있었지만, 그 여름밤만큼은 같은 고민을 나누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