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의 재회, 내일의 고민
그녀를 10년 만에 다시 보게 될 줄은 몰랐다. 서울역 플랫폼에서 무심코 고개를 돌렸을 때, 익숙한 실루엣이 내 시선을 사로잡았다. 검은색 코트 깃을 세운 채 벤치에 앉아 있는 그녀는 여전히 왼쪽 다리를 오른쪽 다리 위에 포개는 버릇이 남아있었다.
다가가는 발걸음에서 소리 없는 떨림이 전해졌다. 주변의 소음이 갑자기 멀어졌다. 기차의 도착 알림, 사람들의 웅성거림, 전광판의 깜빡임까지 모두 희미해졌다. 오직 그녀와 나 사이의 거리만이 현실이었다.
"서연아."
내 목소리를 듣고 고개를 들었을 때, 그녀의 눈동자에 비친 놀라움은 금세 미소로 바뀌었다. 우리는 오랜 시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어색함 없이 대화를 이어나갔다. 대학 시절 서로에게 고백하지 못한 감정들, 각자의 길을 걷게 된 이유, 그리고 지난 10년간의 삶에 대해.
카페에 앉아 그녀가 커피잔을 들어올릴 때마다 왼손 네 번째 손가락에 빛나는 반지가 내 시선을 붙잡았다. 예상했던 현실이었지만, 가슴 한구석이 무너지는 소리는 여전히 선명했다.
"다음 달에 결혼해. 초대하고 싶었는데 연락처를 몰라서..." 그녀의 목소리에는 미안함이 묻어있었다.
나는 미소로 응답했다. "축하해. 정말 잘 됐다."
그녀의 손가락이 커피잔 테두리를 따라 원을 그렸다. "넌 어때? 누군가 있어?"
그 순간, 내 입에서 나온 대답은 나 자신도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 "사실 다음 주에 미국으로 떠나. 박사 과정을 밟게 됐어."
거짓말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눈에 스친 감정—놀라움과 아쉬움이 뒤섞인—은 진실이었다.
우리의 재회는 두 시간으로 끝났다. 헤어질 때 그녀는 내 어깨를 가볍게 안으며 행운을 빌어주었다. 그 순간 느껴진 그녀의 향기는 10년 전과 달라져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스마트폰으로 항공권 예약 사이트를 열었다. 손가락이 떨렸다. 내일의 고민은 오늘 시작되었다. 재회가 남긴 것은 과거의 그리움이 아닌 새로운 선택의 기로였다. 서연과의 만남이 내게 일깨워준 것은 그녀를 향한 미련이 아니라, 내 삶을 바꿀 용기였다.
목적지를 입력하는 창에 'San Francisco'라고 적었다. 진짜 거짓말이 되는 순간, 가슴속에서 무언가 단단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때로는 재회가 이별보다 더 강한 시작점이 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