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민의 재회
벽시계가 두 번 울리기 전, 나는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십오 년 만의 재회. 내 인생에서 지우고 싶었던 유일한 사람과의 만남을 앞두고 손바닥에 밴 땀이 창가에 맺힌 빗방울처럼 차갑게 식어갔다.
"도착했습니다." 카페 문이 열리고 그가 들어왔다. 학창시절 그 얼굴에 시간이라는 조각가가 남긴 흔적들이 보였지만, 눈빛만은 변함없었다. 내가 고통스럽게 기억하는 바로 그 눈빛.
"오랜만이야, 수현아." 그의 목소리에 나는 무심코 커피잔을 꽉 쥐었다. 이름을 부르는 방식까지 그대로였다.
"왜 연락했어?"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그의 메시지를 받았을 때 지우려던 손가락이 망설였다는 사실을 그는 모를 것이다.
"사과하고 싶어서." 그가 의자에 앉으며 말했다. "십오 년 동안 매일 고민했어. 연락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창밖으로 비가 더 세차게 내리기 시작했다. 우산을 가져오지 않은 행인들이 허둥지둥 대피하는 모습이 보였다. 나도 대피하고 싶었다. 이 대화에서, 이 순간에서.
"뭘 위한 사과야? 네가 나를 배신한 거? 아니면 내 꿈을 망쳐놓은 거?" 목구멍까지 차오르던 말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는 잠시 침묵했다. "둘 다. 그리고 더 많은 것들." 그의 눈에 맺힌 눈물이 그가 진심이라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알아? 가장 아이러니한 건, 네가 없는 십오 년이 내 인생에서 가장 성공한 시간이었다는 거야." 내 말에 그의 눈이 흔들렸다.
"알고 있어. 네 전시회 소식 들었어. 네가 꿈꾸던 그 모든 것을 이룬 것 같아 다행이야."
테이블 위에 놓인 그의 손이 떨리고 있었다. 내가 미술대학 입시를 앞두고 있을 때, 그는 내 작품집을 실수로 망쳐놓았다. 아니, '실수'라고 믿고 싶었다. 나중에야 그가 내 성공을 시기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수현아, 그때 내가... 네 작품을 망친 건 시기 때문이 아니었어." 내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그가 말했다. "두려웠어. 네가 떠나면... 나를 잊을까 봐."
그 순간, 오랫동안 내 안에 있던 무언가가 조금씩 풀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증오라는 매듭이 서서히 풀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정말 미안해. 네 꿈을 망치려 했던 내가... 용서받을 자격이 없다는 걸 알아. 하지만 이제라도 말하고 싶었어."
침묵이 우리 사이를 채웠다. 비는 그쳤고, 햇빛이 커튼 사이로 비집고 들어왔다. 그리고 뜻밖의 감정이 내 안에서 피어올랐다. 용서가 아닌, 해방감.
"고마워, 네 고민이 우리의 재회를 만들었네." 마지막으로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덕분에 내가 더 이상 과거에 묶여있지 않아도 된다는 걸 알게 됐어."
카페를 나서며 흠뻑 젖은 거리를 걸었다. 십오 년간의 고민과 분노를 씻어내는 빗물처럼, 어쩌면 우리는 서로에게 필요한 해방이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