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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자매

자매의 고민 - 우리가 나눠 가진 그림자

누군가를 위해 쓰는 편지는 언제나 내 것이 아닌 목소리로 시작된다. 나는 언니의 목소리를 빌려 쓰고 있다. 아니, 정확히는 언니인 척하며 내 목소리를 내고 있다.

"하나야, 엄마가 보시면 안 돼. 알았지?" 소연 언니는 내게 쪽지를 건네며 귓속말로 당부했다. 열세 살 나이에 그 쪽지가 무엇인지 알 턱이 없었지만, 언니의 눈에 맺힌 눈물이 나를 침묵하게 했다. 우리 집 이층 창문 아래로 남자아이가 서성이던 날이었다.

나는 언니의 편지를 대신 전하는 우체부가 되었다. 중학교 교문 앞에서 기다리다 모르는 오빠에게 봉투를 건네고 도망치듯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엄마 몰래 이어지는 연애 통로의 중간 지점에 내가 있었다. 내가 감당하기엔 너무 묵직한 비밀이었다.

"하나 너는 언니랑 달라. 공부도 잘하고 말도 잘 듣고." 엄마의 말에 빛나는 언니의 눈빛이 칼처럼 느껴지던 밤들. 우리는 서로 다른 존재로 정의되길 강요받았다. 한 집에 살면서도 우리는 서로 다른 우주를 살아가는 사람들 같았다.

중3이 된 어느 날, 언니의 서랍에서 담배를 발견했을 때의 고민이 아직도 선명하다. 말해야 할까, 숨겨야 할까. 언니를 배신하는 일이 될까, 언니를 지키는 일이 될까. 열일곱 살의 언니에게는 내가 알지 못하는 세계가 있었다.

"하나야, 지금 네가 갖고 있는 고민은 나도 다 겪었어." 대학에 입학한 언니가 말했다. 그때 처음 알았다. 우리는 서로를 거울처럼 들여다보며 자라왔다는 것을. 언니가 먼저 밟아놓은 길 위에서 나는 조금 더 쉽게 걸을 수 있었다는 것을.

어제, 열아홉이 된 나는 언니의 일기장을 우연히 발견했다. "하나의 고민을 들었다. 내 고민과 똑같았다. 십 년 전의 나를 보는 것 같아서 아팠다." 언니의 글씨체가 내 마음을 떨게 했다.

오늘, 나는 언니에게 편지를 쓴다. 이번엔 누구의 목소리도 빌리지 않고, 온전히 내 목소리로. 우리가 나눠 가진 고민들은 사실 하나의 그림자였다는 것을, 서로 다른 각도에서 바라봤을 뿐이라는 것을.

창문 너머로 석양이 물든다. 언니는 이제 멀리 서울에서 살고 있지만, 오늘 밤 같은 달을 보고 있을 것이다. 어쩌면 나와 똑같은 고민을 안고서. 사랑과 증오, 질투와 연민이 뒤엉킨 채 자매라는 이름으로 묶인 우리의 인생이, 사실은 하나의 긴 대화였다는 것을 이제야 알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