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사친의 고민: 말하지 못한 진실
"널 좋아해." 내 입술이 떨리며 내뱉은 말은 실제로 나온 게 아니라 머릿속에서만 맴돌았다. 선영이를 바라보는 내 눈빛만 달라졌을 뿐, 여전히 난 그녀에게 '믿음직한 남사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민준아, 너랑 얘기하면 정말 편해. 다른 남자애들은 다 뭔가를 바라는 것 같은데, 넌 그냥 내 말을 들어주잖아." 선영이가 카페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홀짝이며 말했다. 그 말이 내 가슴을 찌르는 비수가 되었지만, 난 여전히 미소를 지었다.
"당연하지, 우린 친구니까." 내 말에서 쓴맛이 느껴졌지만, 선영이는 알아채지 못했다. 3년. 대학교 1학년 때부터 난 선영이의 '좋은 남사친'이라는 역할에 갇혀 있었다.
선영이의 휴대폰이 울렸다. 화면에 '재훈 오빠'라는 이름이 반짝였다. 그녀의 얼굴이 환해졌다. "어? 재훈 오빠다! 잠깐만, 받고 올게." 그녀가 자리를 떠났다. 창밖으로 보이는 선영이의 환한 미소는 내가 결코 만들어주지 못한 것이었다.
테이블 위에 남겨진 그녀의 다이어리가 눈에 들어왔다. 절대 열어보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손이 저절로 움직였다. 손가락이 살짝 페이지를 넘기자 내 이름이 보였다.
'민준이는 정말 내 천사 같은 존재야. 때로는 오빠처럼, 때로는 동생처럼, 언제나 내 편인 사람. 이런 친구가 있어서 정말 행운이야.'
마음이 무너져 내렸다. 천사라니. 난 천사가 아니라 그저 비겁한 사람이었다. 진심을 말하지 못하고, 친구라는 가면 뒤에 숨어 그녀 곁에 머물렀으니까.
선영이가 돌아왔다. "미안, 오래 걸렸지? 재훈 오빠가 내일 데이트 장소 물어보는데..." 그녀의 말이 희미해졌다. 내 머릿속은 결심으로 가득 찼다.
"선영아, 사실 할 말이 있어." 내 목소리가 떨렸다.
"응? 무슨 일이야?" 그녀의 눈이 커졌다.
"난 네가..." 그 순간, 선영이의 휴대폰이 다시 울렸다.
"어? 미안, 재훈 오빠가 또... 잠깐만 받고 올게." 그녀가 또다시 자리를 떴다.
그때 깨달았다. 내 고민은 이미 답이 정해져 있었다. 선영이의 행복을 위해서라면, 난 그저 '믿음직한 남사친'으로 남아야 했다. 때로는 사랑한다는 말보다 침묵이 더 큰 사랑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그녀가 돌아왔을 때, 난 평소와 같은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근데 내일 데이트는 어디로 가기로 했어?"
가끔은 가장 가까운 거리가 가장 먼 거리가 되기도 한다. 남사친의 비극은 바로 그것이다 - 모든 비밀을 공유하면서도, 가장 중요한 진실만은 영원히 말하지 못하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