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사친의 목소리는 스트레스 해소제
지금 당장 누군가에게 전화기를 던져버리고 싶었다. 스마트폰 화면에 찍힌 업무 메일만 스무 개, 상사의 부재중 전화는 여덟 통. 아파트 천장에서는 윗집 아이가 달리는 소리가 쿵쾅거렸고, 냉장고에는 상한 우유와 시들어버린 채소만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런 날, 내 머리카락은 한 올씩 떨어져 나가고 있었다.
"지은아, 살아있냐?"
그때 울린 전화는 학창 시절부터 곁에 있었던 남사친 민우였다. 그의 목소리에서는 언제나처럼 장난기가 묻어났지만, 오늘따라 그 익숙한 톤이 마른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느껴졌다.
"살아있긴 한데, 살고 싶진 않아."
내 목소리는 물에 젖은 휴지처럼 축축하게 흐물거렸다. 민우는 잠시 침묵했다. 그리고 곧, "창문 열어봐. 지금."이라는 황당한 말을 던졌다.
의문을 품으며 베란다 창문을 열자 바람이 내 얼굴을 쓸었다. 그리고 맞은편 건물 옥상에 서 있는 민우가 보였다. 그는 양손에 무언가를 들고 있었다.
"뭐하는 거야?"
민우는 웃음을 터뜨리며 손에 들고 있던 풍선을 하늘로 날렸다. 빨강, 노랑, 파랑의 풍선들이 황혼의 하늘로 올라갔다. 그리고 다른 손에 들고 있던 확성기로 외쳤다.
"지은아! 스트레스는 풍선처럼 날려버려! 내일은 또 내일의 태양이 뜬다고!"
민우의 목소리가 건물들 사이로 울려 퍼졌다. 주변 창문에서 몇몇 사람들이 고개를 내밀었다. 창피함과 웃음이 동시에 밀려왔다. 황당한 상황에 웃음이 터져 나왔다.
"너 미쳤어? 이런 짓을 왜 해?"
"네가 언제나 그랬잖아. 내가 스트레스 받을 때 제일 필요한 건 절친의 이상한 행동이라고."
맞다. 대학교 시절, 시험 기간에 미칠 것 같았을 때 민우는 갑자기 나타나 캠퍼스에서 춤을 추기 시작했고, 첫 실연의 아픔에 울고 있을 때는 삼십 분 동안 개그 콘서트를 열어주었다.
옥상에서 확성기를 든 민우의 모습은 우스꽝스러웠지만, 그 모습이 내 마음속 무언가를 풀어주고 있었다. 미간에 주름진 채로 굳어있던 얼굴이 서서히 풀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세상에, 너 진짜..."
말을 잇지 못하고 웃음이 터져 나왔다. 웃음과 함께 하루 종일 쌓였던 긴장감이 풀리는 것이 느껴졌다. 스트레스로 단단하게 얼어붙었던 내 마음이, 민우라는 해동기에 의해 서서히 녹아내리고 있었다.
그날 밤, 우리는 옥상에서 별을 보며 소주를 마셨다. 민우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며 생각했다. 어쩌면 인생에서 가장 필요한 스트레스 해소제는 거창한 것이 아니라, 그저 당신의 모든 면을 알고도 여전히 곁을 지키는 누군가의 목소리일지도 모른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