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 스트레스: 당신이 남긴 빈자리
그녀가 떠난 뒤, 내 아파트의 모든 물건들이 나를 비웃기 시작했다. 특히 그녀가 좋아하던 커피잔은 가장 잔인했다. 매일 아침 그 잔을 보며 그녀의 부재를 확인하는 일이 나의 새로운 루틴이 되었다.
의사는 내게 '이별 후 급성 스트레스 장애'라는 진단을 내렸다. 웃긴 이름이었다. 마치 내 상태를 의학적으로 정당화해주는 것 같아서 처음엔 안도감마저 들었다. 최소한 내가 미쳐가는 게 아니라는 증명이라도 된 것처럼.
"심장 박동이 불규칙해지고, 밤에 식은땀을 흘리며, 집중력이 저하되는 증상이 나타나는 건 모두 정상입니다." 의사의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 정상. 그래, 이런 고통이 정상이라니.
약을 받아 나오는 길, 약국 앞 전광판에 28°C라는 숫자가 번쩍였다. 햇빛은 찬란했지만 내 몸은 언제나 서늘했다. 손끝이 차갑고 목이 메었다. 이게 바로 스트레스가 육체적으로 나타나는 방식이라고 했다. 마음의 고통이 살을 파고드는 것.
집으로 돌아오는 길, 우리가 자주 가던 카페 앞을 지나친다. 문득 그녀가 마지막으로 한 말이 떠올랐다. "난 네가 주는 스트레스를 더 이상 감당할 수 없어." 아이러니하게도 이제 그 스트레스는 고스란히 내게 돌아와 있었다.
약을 물과 함께 삼키며 창가에 앉았다. 거리의 사람들은 각자의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누군가는 웃고, 누군가는 서두르고, 또 누군가는 내처럼 혼자였다. 그들 중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내 같은 고통을 겪고 있을까 궁금해졌다.
태양이 지평선 너머로 기울기 시작할 때, 나는 그녀가 남겨둔 물건들을 정리하기로 했다. 치약, 헤어핀, 책 몇 권. 그녀의 존재가 응축된 사소한 물건들. 하나씩 상자에 담으며 내 심장은 이상한 리듬으로 뛰었다. 의사가 말한 '불규칙한 심장 박동'이 바로 이런 감각일까.
마지막으로 그녀의 커피잔을 들어올렸다. 잔을 바라보다 문득 깨달았다. 이별의 고통이 영원할 거라고 생각했지만, 시간은 계속 흘러가고 있었다. 스트레스는 현재진행형이지만, 어느 순간 이 고통도 기억이 될 것이다.
커피잔을 싱크대에 내려놓고 창문을 활짝 열었다. 저녁 공기가 방 안으로 밀려들었다. 처음으로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스트레스로 굳어있던 어깨가 조금씩 풀어지는 느낌이었다. 어쩌면 이별의 가장 큰 아이러니는, 그것이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이라는 점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