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드라마: 스트레스의 무대
정확히 밤 11시 37분, 민지는 자신의 침대에서 마지막 드라마를 본다고 생각했다. 그녀의 손가락은 리모컨 위에서 떨리고 있었고, 평소라면 즐겨 볼 드라마가 오늘은 그저 스트레스의 또 다른 형태로만 느껴졌다.
"오늘 회의에서 프로젝트 발표 준비 다 했겠죠?" 팀장의 목소리가 드라마 속 대사처럼 귓가에 울렸다. 민지는 화면을 응시하면서도 내일 발표를 위한 자료가 완성되지 않았다는 사실만 생각하고 있었다. 화면 속 주인공은 행복한 결말을 향해 달려가는데, 그녀의 현실은 점점 더 꼬여만 갔다.
드라마 속 남자 주인공이 여자 주인공에게 프러포즈하는 장면에서 민지의 핸드폰이 울렸다. 화면에 '팀장님'이라는 이름이 떠올랐다. 밤 11시 40분. 민지의 심장은 마치 타악기처럼 빠르게 뛰었다. 그녀의 손바닥에서는 식은땀이 배어 나왔다.
"내일 발표 취소됐어요. 대신 오늘 밤까지 이메일로 자료 보내주세요. 해외 지사에서 갑자기 일정이 바뀌었네요."
통화가 끝난 후, 민지는 TV를 끄지 않은 채 노트북을 켰다. 드라마는 여전히 행복한 결말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배경에서는 감미로운 OST가 흘러나왔지만, 민지의 귀에는 자신의 숨소리와 키보드 타이핑 소리만 들렸다.
새벽 3시, 민지는 완성된 발표 자료를 이메일로 보냈다. 그리고 아직도 켜져 있는 TV를 바라보았다. 드라마는 이미 오래전에 끝났고, 다른 프로그램이 방영 중이었다. 그제서야 민지는 리모컨을 집어 들었다.
화면이 꺼지는 순간, 거실에 갑작스러운 어둠이 내려앉았다. 그제서야 민지는 자신이 얼마나 지쳐 있는지 깨달았다. 그때, 그녀의 핸드폰에 알림이 울렸다. 팀장이 보낸 메시지였다.
'발표 자료 잘 받았습니다. 오늘 정말 수고 많았어요. 그리고... 혹시 요즘 제가 민지 씨에게 너무 많은 일을 맡기고 있나요? 드라마처럼 인생이 항상 해피엔딩이면 좋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죠. 하지만 우리가 함께 만들어가는 이야기도 나름의 의미가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내일은 쉬세요.'
민지는 휴대폰 화면을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그리고 처음으로 그날 밤, 미소를 지었다. 어쩌면 인생은 끝없는 드라마처럼, 스트레스로 가득 찬 에피소드가 끝나면 새로운 에피소드가 시작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모든 에피소드가 모여 자신만의 시리즈를 완성하는 것일지도.
민지는 침대에 누우며 생각했다. 내일은 드라마 대신, 잠시 자신의 이야기에서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결국 우리 모두는 각자의 드라마 속 주인공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