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드게임의 밤: 스트레스의 역습
윤석의 손바닥에서 주사위가 춤을 췄다. 그의 인생도 그 주사위처럼 통제를 벗어나 있었다.
"이번엔 꼭 이겨야 해." 윤석은 중얼거렸다. 거실 테이블에 펼쳐진 보드게임 판은 마치 그의 삶을 닮은 전장이었다. 형형색색의 말들, 카드들, 자원 토큰들이 질서정연하게 배치되어 있었지만, 그 질서는 한 턴만에 무너질 수 있었다. 마치 그의 정신 상태처럼.
회사에서 돌아온 후, 윤석에게 금요일 밤 보드게임 모임은 유일한 탈출구였다. 컴퓨터 화면에서 벗어나 실제 인간과 마주 앉아 게임을 하는 그 시간만큼은 업무 메일, 상사의 부당한 요구, 마감일의 압박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다.
"너 차례야," 민지가 그의 어깨를 툭 쳤다. 민지의 목소리에서 승리의 자신감이 느껴졌다. 그녀의 말은 이미 결승선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윤석은 주사위를 굴렸다. 소리 없이 테이블 위를 구르던 주사위가 마침내 멈췄다. 1과 2. 최악의 수였다.
"진짜 운이 없네." 동현이 웃으며 말했다. 그 웃음소리가 윤석의 귓가에서 비웃음처럼 울렸다. 목에 감겨 있던 넥타이가 갑자기 더 조여오는 듯했다.
윤석은 말을 세 칸 움직였다. '프로젝트 실패: 처음으로 돌아가시오.' 보드 위의 글자가 그의 눈에 들어왔다. 마치 월요일 아침 메일함에 가득 찬 빨간 깃발 표시된 메일들처럼.
"이런! 안됐네, 윤석아." 유진이 위로하듯 말했지만, 그녀의 눈에도 기쁨이 서려 있었다. 모두가 이기고 싶었다. 모두가 무언가에서라도 승리하고 싶었다.
윤석은 말을 처음 위치로 되돌렸다. 땀이 등줄기를 타고 흘러내렸다. 에어컨이 돌아가고 있는데도 그의 몸은 뜨거웠다.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보드게임판이 흐릿해지면서 그 자리에 회사 업무 화면이 겹쳐 보였다. 마감 기한. 실수. 책임 추궁. 완벽해야 한다는 압박감.
"괜찮아?" 유진이 물었다. 그제야 윤석은 자신의 손이 떨리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잠깐만..." 윤석은 자리에서 일어나 화장실로 향했다.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은 낯설었다. 언제부터 그의 눈 밑에 다크서클이 자리 잡았는지, 언제부터 미소가 사라졌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윤석은 차가운 물을 세수했다. '이건 그냥 게임이야. 이길 필요도, 완벽할 필요도 없어.'
거실로 돌아왔을 때, 친구들은 계속해서 게임을 진행하고 있었다. 윤석은 자신의 자리에 앉지 않고 그들을 지켜보았다. 긴장된 표정, 승리를 앞둔 기대감, 실수에 대한 좌절감. 그들의 얼굴에서 자신을 보았다.
"난 이번 판은 패스할게. 그냥 너희들 구경할래." 윤석이 말했다.
동현이 이상하다는 눈길을 보냈지만, 곧 게임에 다시 집중했다. 윤석은 소파에 등을 기대고 친구들의 게임을 지켜보았다. 그리고 오랜만에 진짜 웃음이 나왔다. 주사위가 테이블 위에서 춤을 추는 동안, 윤석의 어깨에서는 눈에 보이지 않는 무거운 짐이 조금씩 내려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