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의 스트레스: 삶은 버티는 행위다
심장이 내 가슴을 박차고 나갈 것 같은 느낌이 드는 순간, 나는 알람 소리가 아닌 옆집 아이의 울음소리에 잠에서 깼다. 또 다시 시작된 하루. 생존을 위한 하루. 내 삶은 이미 오래전부터 '살아남기'라는 단 하나의 목표로 단순화되어 있었다.
회사로 향하는 지하철에서 나는, 내 왼쪽 귀로 들어오는 전동차의 철 마찰음과 오른쪽 귀로 들어오는 사람들의 한숨소리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려 애쓴다. 스마트폰 화면에는 마이너스 통장 잔고가 적나라하게 빛나고, 머릿속에는 곧 다가올 월세 날짜가 붉은색으로 깜빡인다. 지하철 손잡이를 너무 세게 움켜쥔 나머지 손바닥에 손잡이 모양이 선명하게 찍힌다.
"오늘 회의 자료 준비됐나요?" 팀장의 목소리에는 언제나 불안이 묻어있다. 그의 불안은 곧 나의 스트레스가 된다. 사무실의 형광등 불빛은 항상 너무 밝아서 내 불안을 더 선명하게 비춘다. 커피 잔을 들어 올릴 때마다 미세하게 떨리는 손가락들. 생존의 징후다.
점심시간, 나는 회사 근처 공원 벤치에 앉아 도시락을 꺼낸다. 싸온 김밥에서는 아침에 급하게 준비한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옆자리에 앉은 노인은 비둘기들에게 빵 부스러기를 던져준다. 비둘기들은 서로 부스러기를 차지하기 위해 날개를 퍼덕이며 싸운다. 그 광경이 웃긴 건지 노인은 미소 짓는다. 나는 그 웃음이 이해되지 않는다. 생존 투쟁에 무슨 웃음이 있다는 말인가.
퇴근길, 약국에 들러 두통약을 산다. 약사는 "요즘 스트레스 받으세요?"라고 묻는다. 나는 웃으며 "누가 안 받나요"라고 대답한다. 내가 한 번도 웃지 않았는데도, 내 얼굴에는 이미 웃는 근육이 발달해 있다. 생존을 위한 진화다.
집에 도착해 현관문을 열자마자 쏟아지는 고지서들. 나는 그것들을 침대 옆 탁자에 쌓아둔다. 내일의 문제다. 오늘은 그저 살아남았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하다. 옷을 갈아입다 문득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본다. 언제부터인가 내 어깨는 항상 긴장해 있고, 눈 밑에는 짙은 그림자가 자리 잡고 있다.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며 생각한다. '살아남는 것'과 '사는 것'은 다른 개념이라는 것을. 나는 지금 살아남고 있을 뿐, 살고 있지는 않다. 스트레스는 생존의 증거이자, 내가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는 신호다. 그렇게 생각하면 이 모든 고통이 조금은 견딜 만해진다.
어둠 속에서 내 호흡 소리가 유독 크게 들린다. 들이쉬고, 내쉬고. 생존의 가장 기본적인 행위. 내일도 나는 이 호흡을 계속할 것이다. 그리고 그 사실만으로도, 어쩌면 우리는 모두 삶의 챔피언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