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레스 출근길: 마지막 퇴사 버튼
출근 버스 안에서 혈압계 앱을 확인한 순간, 화면 속 숫자가 솟구쳤다. 140/95. 아, 또 경계성 고혈압이다. 박준영은 자신의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오늘도 어김없이 찾아오는 스트레스의 신호탄이었다.
버스 창문에 비친 그의 얼굴은 10년 전 입사 당시의 모습과는 판이했다. 주름이 깊게 패인 눈가, 옅어진 머리카락, 무표정한 입꼬리. 그는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출근길 도로는 항상 그랬듯 꽉 막혀 있었다. 마치 그의 경력처럼.
"준영 씨, 오늘도 제안서 수정본 부탁해요. 아, 그리고 어제 말한 기획안도 오늘까지 가능하죠?"
사무실에 도착하자마자 귓가를 파고드는 팀장의 목소리. 그 목소리는 마치 귀 속에 직접 침을 뱉는 것처럼 불쾌하게 느껴졌다. 준영은 무언가가 가슴을 짓누르는 느낌을 받았다. 오래된 스트레스의 친구, 공황 발작이 다시 찾아오려는 신호였다.
화장실로 급히 달려간 그는 차가운 세면대에 얼굴을 파묻었다. 거울 속 그의 얼굴은 물방울 사이로 일그러져 보였다. 그때, 스마트워치에서 알림이 울렸다.
"[스트레스 측정 앱] 경고: 현재 스트레스 지수 89/100. 위험 수준입니다. 심호흡을 권장합니다."
준영은 웃음을 터뜨렸다. 심호흡으로 해결될 문제였다면 애초에 이렇게 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는 주머니 속의 명함을 꺼내 들었다. '퇴사 컨설팅 - 당신의 새로운 시작을 도와드립니다.'
한 달 전, 출근길 버스 정류장에서 우연히 받은 명함이었다. 웃긴 건, 그 명함을 건넨 여자가 5년 전 같은 회사에서 갑자기 사라진 동료 정유진이었다는 점이다. 당시 그녀는 '번아웃'으로 휴직 후 연락이 끊겼다.
"결정하셨나요?" 화장실 칸막이 너머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깜짝 놀란 준영은 뒤를 돌아보았다. 그곳에는 정유진이 서 있었다.
"어떻게 여기...?" 준영의 말을 자르듯 유진은 미소를 지었다.
"우리는 당신 같은 사람들을 돕습니다. 스트레스 수치가 임계점을 넘어서면 자동으로 알림이 옵니다. 퇴사는 죽음이 아니라 재탄생입니다."
유진은 작은 버튼이 달린 장치를 내밀었다. "이 버튼을 누르면, 지금 이 순간 모든 것이 끝납니다. 당신의 데이터는 회사 시스템에서 삭제되고, 새로운 신분과 함께 다시 시작할 수 있어요. 이건 스트레스에서 벗어나는 마지막 출구입니다."
준영은 떨리는 손으로 그 장치를 받아들었다. 사무실에서 그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팀장이었다. 그의 관자놀이가 다시 욱신거렸다.
손가락이 버튼 위에서 맴돌았다.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그때 유진은 말했다. "알려드리자면, 저도 5년 전 이 화장실에서 똑같은 선택을 했어요."
준영은 버튼을 내려다보며 생각했다. 오늘의 출근길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이상하게도 그의 스트레스 수치가 서서히 내려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