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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레스판타지

스트레스 판타지: 현실의 균열에서

그날 아침, 유리의 탁상시계가 불가능한 시간을 가리키고 있었다. 9시 63분. 처음에는 고장났다고 생각했지만, 시계는 정확히 작동하고 있었다. 분침이 움직이는 소리가 평소보다 크게 들렸고, 유리는 그 소리에 맞춰 자신의 심장이 뛰는 것을 느꼈다.

"지각이에요. 네, 죄송합니다. 곧 도착하겠습니다." 전화를 끊으며 유리는 벌써 세 번째 지각이라는 사실에 위장이 뒤틀리는 느낌을 받았다. 마감 보고서는 절반도 완성되지 않았고, 상사의 목소리는 점점 더 날카로워지고 있었다. 아파트 현관문을 열 때, 손잡이가 평소보다 뜨겁게 느껴졌다.

그것은 첫 번째 징후였다.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을 때, 숫자들이 순서대로 있지 않았다. 1, 2, 3 대신 1, 5, 꽃, 12, ♪ 같은 기호들이 나열되어 있었다. 유리는 눈을 비비고 다시 보았지만, 버튼들은 그대로였다. 스트레스 때문일 거라고 스스로를 안심시켰다.

지하철역으로 걸어가는 길에 가로수들이 유리를 향해 몸을 숙였다. 누군가 속삭이는 것 같았다. "괜찮아, 도망쳐도 돼." 유리는 귀를 막고 걸음을 재촉했다. 지하철 플랫폼에 도착했을 때, 모든 사람들의 얼굴이 흐릿했다. 마치 연필로 그린 초상화를 누군가 지우개로 문지른 것처럼.

지하철 안에서 유리의 핸드폰이 울렸다. 상사였다. "유리 씨, 마감이 두 시간 앞당겨졌어요.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당신의 스트레스는 당신의 문제일 뿐이니까요."

그 순간, 지하철 창문 밖으로 보이는 풍경이 변했다. 콘크리트 터널 대신, 빛나는 수정 동굴이 나타났다. 승객들은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는 것 같았다. 유리는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창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니, 머리카락이 천천히 파란색으로 변하고 있었다.

"다음 역, 판타지아 광장입니다." 안내 방송이 들렸다. 그런 역은 없었다.

기차가 멈추고 문이 열렸을 때, 플랫폼에는 아무도 없었다. 대신 화려한 비단옷을 입은 작은 요정 같은 생명체가 유리를 향해 손짓했다. "마침내 왔군요. 우리는 당신을 기다렸어요. 이쪽이 진짜 세계입니다. 당신의 스트레스가 현실의 벽을 무너뜨렸어요."

유리는 일어나 문으로 향했다. 한 발을 플랫폼에 내디뎠을 때, 몸이 가벼워지는 것을 느꼈다. 요정이 미소지으며 말했다. "여기서는 당신의 스트레스가 마법이 됩니다. 당신의 불안은 꽃으로, 걱정은 나비로 변합니다."

유리의 가슴에서 무거운 덩어리가 빠져나와 공중에 떠오르더니 반짝이는 나비 떼로 변했다. 처음으로 몇 주 만에 깊게 숨을 쉴 수 있었다.

"돌아갈 수 있을까요?" 유리가 물었다.

"언제든지," 요정이 대답했다. "하지만 대부분은 돌아가지 않아요. 여기서는 당신의 고통이 힘이 되니까요."

유리는 돌아보았다. 지하철은 여전히 그곳에 있었다. 그리고 그 안에는 자신과 똑같이 생긴 누군가가 앉아 있었다. 그 복제인간은 핸드폰을 들여다보며 초조하게 다리를 떨고 있었다. 유리는 이제 선택해야 했다. 그때 핸드폰이 다시 울렸고, 유리는 미소를 지으며 요정의 손을 잡았다. 때로는 현실에서 도망치는 것이 유일한 치유법이니까.